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달려 들어간 화장실에서
소변기 주변의 찌린내가 진동을 한다.
‘하- 이놈들...’
살면서 지금 만큼 변기에 대해
호의롭지 못한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연히 없었다.
호감과 비호감을 떠나
변기를 보며 감정이라는 것을 품어본 적이 없다.
굳이 변기에 대한 그간의 생각,
또는 감정을 끄집어내 보면,
[‘배설’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편리한 의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욕실과 조화롭게 깔끔한 화이트 뚜껑을 덮었을 때가
가장 보기 좋은 물건]이다.
이렇듯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변기에 대해
대체 어떤 감정을 가진단 말인가? ㅎ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2년 전쯤부터 조금씩
변기에 대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집의 제일 꼬마 남자까지 기저귀를 떼면서
우리 집 변기 사용자의 수는 꽉 찬 네 명이 되었다.
네 명 중 직립 사용자는 세명.
그리고 그 세명 중 두 명은 아직 군 미필자라서
조준 능력까지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의 두 꼬마 친구들은
수시로 소변을 떨군다.
그리고 수시로 소변을 떨구는
작은 두 남자 덕분에
변기와 그 주변은 수시로 씻어내야 하는
상습 오염 구간이 되었다.
변기가 차츰 싫어진다.
아이가 한명일 때만 해도
변기 주변의 오염 정도나
찌린내의 정도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는데,
둘째가 기저귀를 떼고부터는 확연히 달라졌다.
가끔 화장실을 들어설 때
마음속에서 우렁찬 울림이 들려온다.
‘이놈의 자식들!’
‘또 흘렸구먼...’
물론, 그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러곤 말없이 변기 주변을
세제까지 동원해 닦는다.
변기를 닦다 보면, 문득 나 역시 이 악취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영향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한몫했을 거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소변 한 방울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마음으로나마 면박을 준 우리 집 남자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에게 소변볼 때의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것도 종종 봐왔던 터라
혀끝까지 올라왔던 소변 잔소리도
마음 깊은 곳으로 쑤욱 집어넣곤 한다.
잔소리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지적할 때
주로 나타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는 것이
대부분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변기 사용에 대한 문제도,
아이들과 같은 입장인 남편이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이 적절하다.
가족 욕실에 남성용 소변기를 설치해 줄 것도 아니면서
남편이나 아이들을 탓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
변기 주변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찌린내를 맡으며
흥분에 겨워 글을 시작했다가,
훈훈하게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들은 겨우 소변 몇 방울을 흘리는 정도지만,
그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나는 어쩌면,
여기저기에 똥덩어리를 흩뿌리고 다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누군가의 넉넉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웃을 일이 더 많은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거슬리는 일들은
틀린 게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