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이다.
“오월은 푸르구나-“쯤으로 시작되는 글을 쓰면 좋을 텐데
내겐 마무리 지어야 할 글이 있다.
어린이 날 올리는 글 치고는 좀 어둡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지지 않게 글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아이의 등교거부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이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단정 짓지는 못하지만 현재는 비교적 안정을 되찾아
학교 생활도 약간의 불안감을 동반하고는 있지만
그럭저럭 잘 이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
아마도 훨씬 더 괜찮은 하루를 보낼 것 같다.
ㅡ
싫고 겁나는 게 많아졌어요.
아이는 등교거부와 동시에
엄마에 대한 애착을 많이 드러냈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고(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는 게 싫으며,
싫고 겁이 나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태권도 학원에서 품띠를 받게 되고
‘품새 선수단’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토요일에 모여서
태권도 훈련을 받는 것인데,
한번 훈련을 가면 2-3시간을 체육관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품새단은 놀지 않고 계속 운동만 해서 힘들어요. 재미없어요.” 정도의 말은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 4월,
품새단 연습이 다시 시작된다고 하자
아이는 품새단 연습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운동을 너무 오래 하느라 힘들고,
그리고 너무 오래 하기 때문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등교거부와 비슷한 이유와 양상으로
품새단도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설득하고,
태권도 부관장님을 통해 아이를 또 설득해서
품새단을 보내기로 했다.
가기 싫다 해서 안 가면,
그것이 어쩐지 아이를 더 나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어쨌든 가는 걸로 아이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렇게 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품새단 연습날이 다가올수록
“엄마 이번에만 안 가면 안될까요?
한 번만 안 가면 안될까요?”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부탁을 해 왔다.
결국, “그래, 그 정도로 힘든 거면 가지 말자.” 했고,
그즈음 코로나 확산이 심해지며
품새단 연습이 취소되어
자연스레 아이는 행복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수행평가 시즌의 어느 날
하교 후 돌아온 아이가
수행평가할 때 힘든 점이 있다고 했다.
수행평가를 먼저 끝낸 사람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있는 게
무섭고 힘들다고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처음에는 황당했다.
‘시험 볼 때 먼저 끝난 사람이 엎드려 있는 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 그게 힘들다고 설마?’
마음속으로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들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러나 우선은 꾹꾹 누르고...
아이에게 “그랬구나, 그게 좀 힘들었겠네.”하고는
곧이어 학교생활이 원래 그렇다는 썰을 풀기 시작했다.
엄마도 어릴 적에 시험을 보면 엎드려 있었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시험이 끝나면
엎드리고 있단다. 하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는 그건 알겠지만 그래도 자기는 무섭다고 했다.
수행평가 시험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시험을 풀고 나서의
그 시간이 너무 겁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 선생님이랑 상담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엄마의 적극 개입을 요구했다.
이리로 갈지 저리로 갈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아이가 극복해 내는 게 최선이지만,
2학년짜리 우리 집 꼬마는 그저 공포에 질려 있기만 했다.
그것도 학교 가는 아침시간과 저녁 시간에만...
외부 상담센터를 찾아가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기만 해도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듣기 좋던 ‘엄마’ 소리가 이제는 갑갑함과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사실은 아이가 부르는 ‘엄마’ 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줄줄이 비엔나처럼 딸려올 아이의 고민과 요구를 스펀지처럼 쭉쭉 받아들이는 일이 힘들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마음이 조여들었다.
출근을 해도 우울했고,
퇴근 후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도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고 느껴지자
그때부턴 삶의 의미 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이 문제들로부터,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에 와서 되짚어보면,
아이는 내가 힘들어하는 만큼,
그리고 내가 우려하는 만큼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엄마 입장에서 아이의 고충을 반복적으로 듣고
그것에 대해 수시로 생각을 하다 보니
엄마인 나의 마음이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걱정은 새로운 걱정을 불러들였고,
해결방법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의욕도 없었고,
어제의 아름답고 예뻤던 세상은
더 이상 내 눈앞에 펼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첫 만남을 가족 상담으로 예약했다.
부모가 먼저, 그리고 아이가 나중에 상담을 하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이나 상담을 했지만, 상담을 완료하지 못했다.
상담을 완료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더 명쾌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 후 다시 상담 날짜를 잡았다.
아이와 엄마 둘만.
상담을 마무리하며 정리된 내용은,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현재 아이에게 무서운 존재다.
-선생님도 무섭기만 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무서움을 허물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엄마와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해 엄마와의 애착을 원한다.
-엄마와 월요일마다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등교거부에 대해서...
아이는 지금은 나아졌지만, 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는 가야 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기 힘든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학교에는 갈 거라는 말을 했다.
아이가 학교를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을 때,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는 질문에
아이는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그냥 가라고 하면 돼요.”
‘헉. 진짜야? 그런 거였어? 그렇게 간단한 거야?’
상담 선생님께서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셨다.
“어머니 들으셨죠? 그냥 가라고 하면 된대요.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요.”
아슬아슬 흔들렸던 도미노 조각들이
‘좌 아악~’ 소리를 내며 바닥에 자리 잡는 것이 느껴졌다.
아슬아슬하던 도미노보다, 이미 쓰러져버린 도미노들이 나의 마음에 평온을 되찾아 주었다.
문제를 받아들였고,
인정하고
같이 극복해 나가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병행하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기분이 든다.
그만큼 절실했고, 뭐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아이가 수행평가를 할 때
수행평가 후 엎드려 있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고,
월, 화, 수 3일을 어르고 달래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목요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아이를 보며...
‘이 아이가 버티고 버티는 중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목요일 오후 선생님께 상담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과의 상담을 하며
아이의 어려움을 알렸다.
“어떻게 해주세요!”는 아니었고,
아이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걸
담임 선생님께서도 아셔야 할 것 같다며 공유했다.
(물론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래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동반사적으로 “죄송합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이 여러 번 튀어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아이의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자.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줄 몰랐다며,
본인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고
아이와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층 편안해진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해 보니,
생각보다 무서운 분은 아닌 것 같고
선생님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날은 수행평가 후
엎드려 있거나 조용히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대처를 해 주셨다.
아이는 월요일이 되자.
약간의 불안함을 보이긴 했지만,
당연한 곳을 가듯이
씩씩하게 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 정도의 개입은 필요했다.
아이의 학교 부적응 문제를 한 달 반 정도 겪으며
수도 없는 고민거리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졌다.
처음에는 엄마의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무작정 개입을 했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는
개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망칠 수 있다는 걱정에
발을 뺐다. (그러나 마음은 그 상황에 푹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건강한 방법을 찾아가며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지만,
앞뒤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어두웠던 날들로부터는
약간 벗어난 기분이 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