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5)

by 다니엘라


아이의 등교거부 이야기는
5화쯤에서 끝내는 게 애초의 바람이었지만,
생각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진행형인 상태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이전만큼 짧은 간격으로 쓰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관련 글을 이어갈 예정이다.


센터 상담, 담임 상담, 그리고 일주일
상담을 진행하고 나서
상황이 깔끔하게 종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있었기에
생각보다 아이의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지 않는 것을 보며
엄마의 고민은 깊어진다.


적어도 월요일 아침에 눈물바람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리고 화요일은 그다음 날인 어린이날을 기대하며
아침을 견디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침에 작별하는 순간에는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 네 맘 모르지 않아.’


최소한 눈물바람은 하지 않는 걸로 봐서
아이의 상태는 조금 호전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요소가 남아있다.
그리고 본인도 그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싶은 의지는 있다.
다만 방법을 모를 뿐이다.


엄마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요,
아이가 최근 말머리에 붙이기 시작한 표현이다.
“엄마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요....”
이 말의 뒤에는 대충 어떤 내용이 나올지
매번 짐작이 된다.

아이도 알고 있다.
아이에게 싫고 무서운 상황이 펼쳐짐에도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의 등교거부 및 일련의 일들로
엄마도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본인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미안한 모양이다.
아이가 안쓰럽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도 뒤틀린다.
‘하- 진짜 이제 그만 좀 해!’
하는 마음까지 든다.


아이의 불안 요소를 제거해야 할 텐데,
그것이 쉽지 않다.
아이에게는 큼직한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다.
아이와 그 무서운 것을 떨쳐내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본다.

아이의 상황.
아이는 매주 금요일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는데,
피구가 끝나고 나면 휴식시간을 제공받는다.
휴식시간에 다른 놀이는 할 수 없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쉬어야 한다.

아이의 감정.
휴식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있긴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집에도 못 가고 엄마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보지 않았지만, 아이의 상황과 마음이 그려진다.)

극복 방법.
아이와 수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단다.
종이 접기를 해 보는 게 어떨지,
그 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뭘 하는지 살펴보는 게 어떨지,
그 시간에 다른 친한 친구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어보면 어떨지, 방법을 하나 둘 제안해 본다.
그러나 아이는 ‘도리도리’.
부끄러워서 그런 건 물어볼 수가 없단다.
(학교 안 간다고 우는 게 더 부끄러운 거야 인마.)
그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가 상담해 주시면 안 되나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엄마에게 의존만이 살길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 개입은 필요한 게 맞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스스로 불안을 극복해 내는 법을 키우는 것인데
나 역시 만만치 않게 의존적인 성향이라
지혜로운 극복 방법이 번뜩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렵지만,
아이와 수십수백 번 대화를 하며
찾아내고 풀어나가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우린 지금 같이 성장하고 있으며,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한 팀이니까.
힘들고
때론 지긋지긋한 기분이 온 마음을 뒤덮더라도,
마주해야 한다.
언젠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이 나 있을 테니까.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거두는 일부터.
아이가 날 닮은 모습도 분명히 있지만,
이런 사소한 상황을 무서워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멋모르고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나의 초등 학교생활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되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넌 대체 왜 그런 거야?’
하는 느낌이랄까.


인간이 태어나서 부모와 애착을 형성하고,
부모의 곁에 있는 것에서 안정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다.
기저귀를 떼는 시기가 아이들마다 다 다르듯
우리 아이가 부모로부터의
작은 독립을 이루어 나가는 것도
속도가 조금 다를 뿐이다.
표준치를 벗어났을 수 있다.
나갈 때가 되었는데 스스로 날지를 못한다고
준비되지 않은 아기새를 둥지 밖으로
무작정 밀쳐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과정은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가는 아이의
보들보들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라 여기고 싶다.


나는 여전히
약하고 부족한 엄마다.
강해지고 싶고,
단단해지고 싶다는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접혀있던 아이의 날개가
하루아침에 속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을 수 있다.
더딘 나를 보며,
더딘 내 아이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 주기로 한다.


어렵다.
생각만 해도 지끈거린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향한 응원과
아이를 위한 기도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기에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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