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학교 부적응,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조금 낫다.
엄마의 마음이 약하고
아이도 그것을 모르지 않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엄마 곁에 기대려고만 할 때
온전히 토닥거리며 받아주거나
‘시종일관’ 굳세게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엄마였으면 더 괜찮았을 텐데.
나는 ‘시종일관’이라는 게 잘 안 되는 엄마다.
물론 시종일관 맘이 아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어떤 날은 따뜻하고 감싸주는 엄마
그리고 어떤 날은
‘쫌!!!(그만 좀 해라의 줄임말)’하는 엄마였다.
아이의 징징징을 듣고 있자면,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마음속에서는
아주 큰 북이 쾅쾅쾅 울리며 마음을 어지럽히곤 한다.
그건 엄마가 단단치 못해서라고들 한다.
듣는 사람, 아빠.
기다리는 사람, 아빠.
이럴 때 위로가 되는 건
우선은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뿐이다.
기도로 온전한 평안을 찾는 것이 최선이지만,
믿음이 얄팍한 나는 아직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결국 남편을 찾는다.
대부분의 사건 사고는 남편에게 알리곤 한다.
우리 가족의 제1원칙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함께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것이기에,
스스럼없이 대부분의 일을 남편에게 알린다.
그리고 사실은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힘듦을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남편은 잘 들어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준다.
내가 하는 이야기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
그리고 어떤 실수를 해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야기든
가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다.
누군가는
“아빠는 적당히 알고 있는 게 좋아.”
“일하는 사람한테는 집안의 작은 일들까지 알릴 필요는 없어, 일에 집중하도록 두는 게 좋지.”
하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기에
나는 그냥 우리 방식으로 한다.
모든 걸 오픈하고 모든 걸 나누는 걸로...
아이의 등교거부 전반에 대해서
남편은 “기다려주자.”의 입장이다.
아내가 힘든 것들을 알고
위로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는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의 고민에 같이 첨벙 뛰어드는 게 아니라,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도맡아서 한다.
나와 함께 있을 땐 궁서체로 이야기를 하던 아이도
아빠와 함께 지내면 온갖 즐거움이 묻은 아이가 된다.
아빠와 함께
‘엄마 몰래’라는 수식어를 달고 늦은 저녁
어묵을 먹으러 다녀온다.
아빠와 함께
‘엄마 몰래’라는 수식어를 달고
플스방에 가서 닌텐도 게임을 하고 온다.
-이제는 엄마도 다 아는 일들-
그리고 아빠는 즐거운 가운데,
너무 심각하지는 않게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아이와 나눈다.
학교에 왜 가고 싶지 않은지를 나누고,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어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눈다.
엄마와 같은 격공감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꽤 괜찮은 대화를 나눈다.
아마 엄마와 아빠의 다른 두 색깔 덕분에
아이도 두려움에만 몰두하지 않고
그럭저럭 버텨내는 것 같다.
대안 교육을 생각하는 남편.
하지만 주 양육자는 아내이니...
남편은 첫째 아이가 어렸을 적부터
자녀를 홈스쿨링으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적은 믿음과,
해로운 것들은 학교에 가서 또래집단에서 많이 배워온다고
생각하기에 학교 교육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홈스쿨링을 하고 싶지만,
주양육자인 아내가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에
공교육을 원하는 아내의 의견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공교육과 홈스쿨링의 중간쯤인,
기독 대안학교 입학을 고려했었다.
공교육과는 문화가 다른 면이 많은
기독교 대안학교가 우리가 사는 지역에 생겨났다.
우리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하는 시기에 맞춰 생겨난 학교라
어찌 보면 실험적인 정신으로 아이를 입학시켜야 하는
상황이며 구조였다.
남편은 “Go!”를 외쳤고,
나는 “STOP!”을 외쳤다.
결국 주 양육자 Win.
그렇게 우리 아이는 공교육의 길로 들어섰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
아이는 학교=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며
등교일만 손꼽으며 기다렸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선생님도 바뀌었고,
적응이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아이가 힘들어하자
남편은 나와 단둘이 대화를 할 때면
지금이라도 기독학교 입학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신만 괜찮다면” 홈스쿨링도 좋겠다며
남편은 숨겨왔던 교육관을 슬며시 꺼내 들었다.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제도에 철저히 틀을 맞춰 살아온 나에게는
그것을 깨는 것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다.
나에게 학교는 ‘당연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학교를 전학하거나 떠나는 일은
‘도피’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서
더더욱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남편과,
우선은 아이가 차분히 적응하도록 기다리기.
그리고 아이의 앞으로의 교육방향을 위해 기도하기.
정도로 정리했다.
지금 당장 변화를 주지는 않겠지만,
남편의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되는 부분이 있어
같이 고민하고 기도하며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
정말로 누군가의 눈에는
이 모든 과정이 ‘유난’ 떠는 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이 일이 부모로서 첫 번째로 얻은
‘미션’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모아 감당해 내는 중이다.
지나고 봤을 때,
‘정말 별일 아니었지,’
하고 웃으며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을 잘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