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진짜 이유
아파트에 고라니가 등장했다.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을 등교/등원시키고 집으로 팔랑팔랑 돌아오는데,
“어, 어. 잠시만요. 잠깐 기다리세요.”
3-4호 라인 통로 앞에서 관리사무소 직원분이 막아선다.
‘진지함’ 순도 100퍼센트의 표정으로 앞길을 막으니
일단 후퇴를 결심한다.
......‘응? 연속극 촬영이라도 하는 건가?’
(머릿속을 재빨리 굴려본다. 대체 왜 대체 왜?)
“어... 근데 왜 못 들어가는 거죠?”
했더니,
“통로 2층에 고라니가 올라가 있어서 위험하니까 일단 기다려 주십쇼.”
“고라니요? 고라니...”
이걸 믿어 말어...
혹시 남편이 준비한 대대적인 몰카는 아닌지
주변을 한번 쭈욱 둘러본다.
몰카는 아닌 것 같고,
관리사무소 직원분은
심각한 얼굴로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하신다.
잠시 후,
119 구조대원 네다섯 분이
커~~~~ 다란 마대자루 같은 걸 가지고
아파트 통로로 뛰어들어 가신다.
이내 “께루룩~~~!!” 하며
‘나 좀 살려줘!!’ 하는 짐승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소방대원 분들은 그들이 잡은 고라니를
포대자루에 고이 담아
겸손한 표정을 남긴 채 점점 멀어져 갔다.
이 모든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었다.
고라니는 2층 층계참에서
7층까지 펄쩍펄쩍 뛰어올라갔고,
결국
소방대원들에 의해 얌전히 포대에 담겨 내려왔다.
근데 대체 고라니가 어디에서 온 걸까?
아파트 근처에 산이 있긴 하지만,
고라니가 아파트까지 내려오기엔
지나치게 험한 길이다.
아파트와 가장 가까운 산으로 거리를 계산해도
최소 6-8차선의 도로는 건너와야
우리 아파트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설마 지하차도로 왔으려나...?)
고라니에게는
이 먼길을 떠나올만한 분명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시내 구경을 하려고 목숨을 내바치진 않았을 것이다.
딱 한 가지 이유가 뇌리를 스친다.
‘배고픔’
고라니는 누군가의 배고픔 때문에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것이 본인의 배고픔이건,
어린 새끼의 배고픔이건
누군가의 굶주림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고라니가 가족들의 품으로 잘 돌아갔길 바라며
하루를 쭈욱 보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아이들과의 잠자리 동화에서
또 다른 ‘고라니’를 만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고라니’는 북극곰이다.
그 북극곰의 이름은 ‘눈보라’.
북극이 매년 따뜻해져 빙하가 얼지 않아
바다로 사냥을 가지 못한 눈보라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마을로 내려온다.
인간들의 쓰레기통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찾던 북극곰은
판다가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진을 보게 된다.
그것도 한참 동안이나.
그때 눈보라를 발견한 인간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눈보라를 쫓아낸다.
인간들을 피하다가
진흙탕에 엎어져 흙 범벅이 된 팔을 보며
사진 속의 판다를 떠올린다.
진흙으로 분장을 해서 판다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된
북극곰은 마을 어귀로 다시 내려간다.
인간들에게 발견된 눈보라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눈보라는 인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마을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눈보라를 판다로 눈속임할 수 있게 도와주던
진흙들이 조금씩 닦여나가
눈보라는 다시 북극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인간들은 기겁을 하며 눈보라를 쫓아낸다.
사냥꾼은 총을 겨누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 덕분에
눈보라는 사냥꾼의 총알을 피해 인간들의 마을을 떠난다.
사냥꾼은 북극곰이 ‘영원히’ 인간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동화는 막을 내린다.
인간들의 무절제한 ‘삶의 누림’으로 인해
자연에 사는 우리의 친구들의 삶이 위험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인간들 곁에 잠시 등장했던 고라니와
굶주림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인간들 세계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오던 눈보라.
그간의 지나쳤던 ‘누림’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자연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습관이 무얼까?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는다.
고라니와 눈보라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