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쉬는 날.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건강한 하루라고 해봐야 특별한 건 없고
평소보다 육체 활동을 조금 더 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점심 식단을 채우는 것 정도이다.
예를 들면 샐러드?
나란 사람은 워낙에 ‘궁둥이파’ 라서,
운동하고 나돌아 다니는 것보다는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편이 훨씬 더 즐겁다.
‘그래서 건강한 하루 보내기!’
따위의 행동 양식은 미리 결심을 해야
조금이나마 건강한 태도에 가까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단 말이다!!
한동안 미니멀 라이프에
열정을 바쳐 시동을 걸 때는
글 쓸 때를 제외하면
늘 무언가를 정리하고 비워내느라
궁둥이를 붙일 시간이 없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 마냥
이 물건 저 물건 하나 둘 늘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미니멀 라이프 고삐가 딱 풀려있다.
전문용어로
‘아몰랑’ 상태. ㅎㅎ
(다시 발동을 걸어야 할 텐데 말이죠.)
덕분에 신체활동은 반으로 줄고
게으르니 스타가 되어
활동 반경 또한 최소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마음이 건전한 흐름을 타고 있을 때면
'신체활동도 늘리고 음식도 건강하게 챙겨 먹자!'는
허공에 띄우는 메아리 같은 결심을 하곤 한다.
그리고 바로 어제!
왔. 구. 나.
온 마음에 평정심이 사라락 깔리고
마음이 건전 트랙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옳. 거. 니.
하며 건강한 하루를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시작이 좋았다.
꼬꼬마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거실을 살랑살랑 정리했다.
지난주처럼 산책은 못했지만,
집안에서 바지런하게 발바닥을 통통거리며 다녔다.
그리고 착! 석!
글쓰기 시작.
배꼽시계가 채 울리기도 전에
코끝을 찰싹 때리는 익숙한 향기가 올라온다.
라면이다.
강한 고추 냄새가 스며있지 않은 걸 보니
진라면 순한 맛이나 안성탕면쯤 되는 것 같다.
아랫집 따님은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걸 봤고,
아랫집 어머니도 운동하러 나가시는 걸 봤다.
야간 근무를 하고 돌아오신
아랫집 아버님이 허기진 배를 채우시는 걸까?
아니면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있는 아랫집 아드님일까?
아니면 지난해쯤 새로 이사 온 대각선 아랫집일까?
아, 3층에도 라면 취식력이 한창 물오를 나이의
자녀들이 있던데, 그녀들일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생각을 끈질기게 이어간다.
라면의 아로마가 우리 집안을 가득 채워
더 이상 코끝에서 새로운 자극이 이어지지 않을 때쯤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건강한 하루를 살아보자!' 했던
쑥스러운 결심을 이내 꼬깃꼬깃 접어 넣고
라면 물을 올린다.
오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냄새는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법.
아래층 어딘가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라면 국물에서 비롯된 아로마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톡 건드리면 주르륵 미끄러지는 도미노처럼
아랫집에서 예고도 없이 밀고 올라오는
라면 도미노는 정말로 막을 수가 없다.
덕분에 지체 없이 라면을 끓였다.
라면은 계란 없이
고기는 쌈 없이
오리지널로 먹는 게 제일이다.
(식습관의 미니멀화라고 들어봤나요 그대?)
오리지널로 팔팔 끓인다.
그리고 쫠깃한 식감을 위해
셰프의 킥으로
모짜렐라 치즈를 사정없이 투하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했던가.
라면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니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건강한 음식으로 마음에 딱 박힌다.
귀가하는 아이들의 후각을 지켜주기 위해
재빨리 환기를 시키고 냄비며 그릇을 씻어둔다.
책상으로 돌아와 마음을 부여잡고
키보드에 다시 손을 올린다.
'어, 어어... 어라.'
새로 끓이기 시작한
라면 국물의 아로마가 다시 번지기 시작한다.
몇 층 일까...
월요일 이른 점심시간
내가 사는 304동 3-4호 라인은
그렇게.
천천히.
라면 도미노에 하나 둘 걸려들고야 말았다.
그림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