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등교 거부 문제로
한동안 마음이 떠들썩했다.
떠들썩한 마음을 글로 옮기다 보니,
블로그와 브런치 계정에서도
끼룩끼룩하며 바닥을 치는 육아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혹은 육아 글은 쓰지 않거나.
그 때문인지 아이와 내가 조금 괜찮아진 지금은
24시간짜리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끼루룩거리는 육아 밑바닥 글을 쓰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하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육아에 관해 쓰고 싶은 글이 생겼을 때
이전처럼 쉽게 키보드에 손을 얹지 못한다.
쓸까 말까 하다가 글감을 바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의 등교거부 문제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던 나와
아이의 분리불안증으로 강아지풀처럼 흔들리던 내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육아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껏 육아에 관한 글이라면 즐겁게 써 왔다.
행복한 이야기든,
어려운 이야기든,
그것도 아니라면 육아 개똥철학이라도
신나게 글나래를 펼쳐왔다.
육아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육아를 하며
위로와 회복이 확실히 보장된 행위였다.
그러나 최근 내 육아력의 부실공사가 드러나고부터는
육아를 글로 다룬다는 것이
주식에 관한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
정말 내가 육아 글을 쓸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와의 대화를 다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턱끝까지 차올랐는데,
마음 꾹꾹이로 지그시 눌러 담고 글쓰기를 미뤘다.
까만 밤이 될 때까지…
어둠이 찾아오고
아이들이 순순히 잠들어주고,
다시 키보드를 펼친 지금
마음에는 궁서체 같은 온화함이 가득 차오른다.
다시 쓰자.
육아도 쓰고,
미니멀도 쓰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끌어다가 쓰자.
독자들은
작가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쓸 때,
그리고 작가가 와장창 넘어지는 모습을 볼 때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읽는 이들에게
메모하고 싶을 정도의 교훈을 주는 일은
원래부터 내 전공이 아니었다.
그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하며
즐겁게 쓰고 읽는 일을 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육아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로 겪고 느끼는 육아의 현장을
나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게 내 글의 매력이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ㅎㅎ)
읽는 이들도,
그리고 쓰는 나도,
원래부터 고릴라만큼 커다란 기대감 같은 건 없었다.
다시 용기를 얻는다.
육아를 마감한 호호 할머니가 되기 전에,
삶의 현장에 있을 때 부지런히 쓰기로 한다.
‘체험 육아 현장’ 이랄까.
이로써 육아 글 울렁증은
완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내일은 또 무슨 이야기를 써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