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친정 엄마께 전화를 넣어 드린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대화가 반복된다.
내가 보내는 말풍선에는
“식사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산책도 좀 하고 그러셔야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와 같은 염려가 늘 담겨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엄마가 보내는 말풍선에도
비슷한 염려가 담겨서 되돌아온다.
“잠 좀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끼니는 꼭 챙겨야 한다.”
우습게도 엄마와 나는
각자에게 더 필요할 것 같은 염려를 서로에게 보낸다.
이런 게 사랑이려니 하며.
매일 반복되는 통화를 하다가
분기별로 한두 번쯤은
옛 추억을 들추기도 한다.
주로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날이라거나,
우연히 옛 사진을 꺼내본 날이라거나,
꿈에서 과거를 만났다거나,
혹은 갑자기 그러고 싶어 져서
어릴 적의 나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을
대체적으로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사건을 통으로 기억하지는 못하고,
일부 조각조각을 세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과거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는
“어머나, 내가 그랬었니?”
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그래 너 그때는 그랬어.” 하며
그때의 엄마의 감정들이나
그 당시 엄마가 나에 대해 혹은 상황에 대해 느꼈던
감상을 나누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당시의 추억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다.
그때의 엄마의 감정을 나눠주는 엄마에게 참 고맙고,
그때의 느낌을 기억해주는 엄마에게 참 감사하다.
엄마의 기억들을 짚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참 사랑을 많이 받아 왔구나,
엄마가 날 이렇게 많이 사랑하고
생각해 주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느낌이 참 좋다.
문자 그대로 “우리 딸 사랑해!” 하는 말보다도
그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기억하는 엄마를 통해
더 많이 사랑받고 있었음을,
그리고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엄마와의 대화를 기억하며
나와 아이의 대화를 떠올린다.
언제나 조곤조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직까지는 엄마를 많이 따라주고
좋아해 주는 덕분에
엄마 앞에서라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쏟아낸다.
가끔은 정말 쉼 없이 말을 해서
‘얘 입 괜찮나? 이러다 입이 닳아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 많은 아이의 이야기들은
너무너무 사소하고
너무너무 별거 아닌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정말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학년인 우리 아이가 생각하는 방향,
느끼는 감정,
그리고 서툴지만 열심히 설명해내는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기억해두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들.
스토리 1)
“엄마, 저는 저희 반에서 거의 탐정급이에요.”
“오 진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저는 우리 반 친구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다 지켜보거든요 엄마.”
“그래? 예를 들면 어떤 장면을 지켜보는 거야?”
“채ㅇ이랑 민ㅇ이가 코딱지 파는 모습 다 봤어요.
걔네들도 코딱지 파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 그렇지 대부분 코딱지는 파겠지.”
“그런데요,
선생님이 코딱지 파시는 모습은 못 봤어요.
왜냐하면, 어른들 중에 코딱지 파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렇구나. 이삭이 선생님은 코딱지 안 파시는구나.”
“그렇죠 맞죠 엄마?
어른들은 원래 코딱지 안 파는 거 맞죠?”
(아니야, 어른도 코딱지 많이 파!! ㅋㅋㅋ코피도 난다구!)
“어른들도 코딱지를 파기는 하는데, 코가 정말 가려워서 못 참겠을 때 그럴 때 파지.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잘 안 들키지.ㅎㅎㅎ”
“아, 그렇구나. 엄마 아빠가 코 파시는 거 본 것 같긴 하다요.”
스토리 2)
“엄마 근데요. 또 있어요. 제가 왜 탐정급인지 이야기해 드릴게요.”
“아 뭐가 또 있는 거야? ㅎㅎ그래 뭔데?”
“우리 선생님은 우리가 급식소에서 점심 먹을 때, 같이 식사를 안 하세요.”
“엄마야! 진짜? 그럼 그동안 선생님은 뭐하셔?”
“그냥 우리 옆에서 먹는 걸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리고 토니랑 저랑 이야기하면서 밥 먹으면,
‘이삭이랑 토니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노?’
하세요.”
“아, 그렇구나. 그럼 선생님은 언제 식사를 하시는 거지?
너희들 모두 집에 가고 나면 그때 도시락 같은 거 드시나 보다. 아니면 아예 점심을 굶으시는 걸 수도 있겠다.”
“아녜요. 근데, 밥을 아예 굶으시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자세히 지켜봤는데, 그다음 날 보면 빼싹 말라 있지는 않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렇구나.”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짤막하다.
특별한 사건 사고보다는 정말 사소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사소해서 더욱 소중하다.
아이와의 대화를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미래의 나도 지금의 우리 엄마를 닮아 있을 테니까
아이와의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기분을,
그리고 그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짜릿한 느낌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아이의 귀여운 말투와, 기특한 생각과, 기발한 사고 전개,
그리고 대화를 할 때의 기분까지도 잘 기억해 두기로 한다.
훗날 장성한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헛헛해져 있을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훌쩍 자란 내 아이가 아빠가 되어
육아의 고됨을 나눌 때 요긴하게 꺼내 쓰기 위해.
엄마는 되도록이면
아이와 함께 한 작고 사소한 감정들을 기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