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등굣길.
집을 나서서 조금 걸어가다 보면
친구들을 한 두 명 만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교문 앞에 다다르면 두 세 명이던 아이들이
하나 둘 불어나 동그란 한 무리가 되어
우르르 등교를 한다.
새싹이 돋고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던 4월,
학교에 가는 게 참 힘들던 우리 아이.
감사하게도 더 이상의 등교거부는 없다.
즐겁게 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학교를 들어서는 아이의 표정도 나쁘지 않다.
다만 엄마와 헤어지기 전 등교 의식은 여전하다.
"엄마, 이따가 마중 나올 거죠?
엄마 사랑해요. 축복해요.(+손뽀뽀 날리기)
꼭 나오세요 이따가!!"
아이는 매일 아침 등교 의식을 빠짐없이 치르며
스스로 불안감을 감소시킨 후 학교로 향한다.
아이가 새삼 기특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방법을
터득한 것만으로도 아이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이전 같았으면
왜 또 내 아이만 저렇게 엄마에게서 눈을 못 뗄까? 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을 텐데,
조금이나마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목감기에 걸려
등교를 못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우리 아이의 낯빛이 밝지 않다.
늘 집 앞에서 만나 손을 꼭 붙잡고
학교에 같이 가던 친구의 결석이 못내 섭섭했나 보다.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오늘은 엄마가 준*이 대신 학교 앞까지 같이 갈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네!" 한다.
잠시 후 늘 만나는 친구들 무리를 만난다.
여름이면 곤충 채집을 같이하는 친구가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매미의 허물을 선물로 건넨다.
"어 벌써 허물을 벗었네."
한마디만 할 뿐 시큰둥하다.
허물은 친구에게 되돌려 준다.
다른 날 같았으면 매미 허물을 매만지고
장난칠 건수를 잡아냈을 텐데,
오늘은 영 흥이 안 오른다.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헤어지며
아이들의 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예*이는 오늘 표정이 어둡고,
토*는 오늘도 여전히 즐거워 보이고,
민*이는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재잘거린다.
지*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들 곁에 서 있고,
우리 아이는 별로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등굣길에 오른다.
아이의 해맑지 못한 얼굴이 마음에 걸려
바닥에 나뒹구는 솔방울을 밟으며
곰곰이 생각의 숲으로 입장한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 '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이라면 응당 [활짝 웃으며
세상 고민은 놀이터 저기 어디쯤에 내던져두고
그저 신나게 제 갈길 가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정확히 나의 틀에 맞춘 생각으로 아이를 재단했다.
8년을 가까이 살며 배우고 익힌
자신이 가진 다양한 감정 중 일부를 드러내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울거나 웃는 단 두 가지의 감정을 갖춘
갓난쟁이 아기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단순한 긍정의 모습만을 기대해왔음을 깨닫는다.
항상 해맑고 즐거우며 장난끼 가득한 모습만
정상 범주에 속하고
혹여나 아이가 심각해져 있다면
그것은 아이의 본모습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려 들었다.
그렇게 아이에게 긍정의 감정만을 기대해 왔던 것이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안했고,
그래야만 우리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왔다.
솔방울을 하나 둘 밟아보며
부옇게 고인 생각을 조금씩 흩어낸다.
'아이라고 늘 밝으라는 법은 없지.'
'어른이라고 늘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우리 아이가 아닌
예*이 표정이 어둡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지*이 표정이 심각하다고 해서
그 아이의 문제를 떠올리진 않았다.
다만 내 아이이기 때문에
이 녀석이 해맑지 못한 아침을 맞았다고 해서
마음을 쓰며 에너지를 소진했던 것이다.
오늘도 아이의 눈짓과 표정을 살피며
하마터면 엄마라는 작은 울타리에
아이의 감정을 가둘뻔했다.
참 다행인 것은
솔방울 생각의 숲 덕분에
나도 아이도 ‘엄마 울타리’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른이라고 늘 어른스러운 법은 없듯,
아이라고 늘 밝으라는 법은 없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