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양가 부모님께 매일 아침 전화를 드리는 이유.
매일 아침 출근길 운전대를 잡는다.
승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에 탑승하고,
전철로 환승까지 해야 했던 서울에서의 직장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다.
처음 운전을 해서 출근하던 날,
혹시 사고가 날까,
길을 잃을까 걱정이 많아
라디오도 듣지 못하고 오로지 운전만 했었다.
그렇게 얼마 후 ‘적응’이라는 것을 하고나서부터는
출근길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께
매일매일 전화를 드렸다.
짧게는 1~2분에서 길게는 10여분까지
그날의 대화 소재나 바쁨의 정도에 따라
통화의 길이가 왔다 갔다 한다.
매일 부모님께 전화를 걸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신혼 초,
남편은 퇴근길에 늘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회사에서 나왔고 들어갈 때 사가야 하는 것이 없는지 확인도 했으며, 기억에 남는 재미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파트에 도착하고 주차를 했는데도 한참을 올라오지 않고 차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남편이 한참만에 전화를 잠시 받고는 통화 중이니 곧 올라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누구랑 통화를 그렇게 길게 하고 오는 거냐고 물었다.
의심을 한 건 아니었지만, 썩 유쾌한 기분도 아니었다.
남편은 내 맘을 다 알겠다는 듯 활짝 웃으며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매일매일 출퇴근 길에 어머님 혹은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고 했다.
안부를 묻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이제 연세가 많이 드신 부모님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거칠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첫 신혼집에서 차를 타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정도로 가까이 사시는 부모님께 남편은 매일 전화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 신혼집을 차린 나는 멀리 포항에 계신 부모님께 주말이 되어서야 한번씩 전화를 드리는 정도였다.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남편의 말이 귓가에 쟁쟁 맴돌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양가 부모님께 오전 시간을 쪼개어 전화를 드렸다.
간밤에는 잘 쉬셨는지,
오늘은 날씨가 어떻다던지,
오늘은 어떤 약속이 있으신지 등등.
처음 한두 번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전화를 드렸다.
지병이 있으신 친정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몸이 좋지 않아 물에 푹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처음에는 목소리의 톤 때문에 걱정이 되어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도 금방 적응이 되어 그런 날은 위로와 응원만 한참 해 드리고 전화를 끊곤 했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평소에도 아들과 통화를 자주 하신 덕에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어머님이 먼저 대화의 소재를 꺼내시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통화가 길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울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늘 궁금해하실 어른들을 생각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전화를 드리려고 노력을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대화 소재는 주로 아이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고, 가끔 아이의 목소리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과의 매일 통화를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시아버님과 친정아버지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전화를 드리지만, 어머니들께 만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전화를 드린다.
이젠 전화를 드리기 전 긴장을 하지도 않고
무슨 말씀을 드릴까 미리 적어놓을 필요도 없다.
매일 통화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시어머님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힘든데 이렇게 매일 전화를 해. 바쁠 텐데 매일 안 해도 괜찮아 며늘.”
나는 “네에.”하고 대답을 하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연락처에서 ‘우리 어머님’과 ‘울 엄마’를 찾아
초록 버튼을 누른다.
정말로
언제가 마지막 통화가 될지 모른다.
나중에는 전화를 걸고 싶어도 걸 수 없는 날이 올 수 있기에 지금 마음껏 누리려고 한다.
그리고,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들보다 내가 먼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 할 수도 있다.
오늘이 진짜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몰라,
목소리만큼은 부지런히 들려 드리려고 한다.
오늘도
이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