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마주하다

5화. 베란다 창으로 만난 태풍 마이삭.

by 다니엘라


태풍 마이삭이 제주, 거제를 거쳐 부산, 울산 지역에도
지난 새벽 3시경 상륙했다.


태풍이 닥쳐오기 전부터
마이삭의 위력에 대해 기사로도 접했고,
학교 알림장의 안내로도 접했기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밤
열한 시가 채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거센 비바람 소리가 집 밖을 메웠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실제로 우리 집 밖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새벽 두 시.
한참만에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베란다 창이 덜컹거리며 주기적으로 흔들렸다.
창밖의 나무들도 사정없이 흔들렸고,
으르렁 거리는 바람의 소리도 고스란히 들려왔다.


심하게 흔들리는 가로등은
전구가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고,
베란다 창은 바람의 흐름을 타 속절없이 흔들렸다.



저러다 베란다 창이 와장창 깨지는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또 실외기는 괜찮을지,
유리창이 깨지는 것에 대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새벽 두 시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었고,
친한 동네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차선책으로 지역 맘 카페에 접속을 했다.
역시 나 말고도 태풍의 추이를 지켜보는
올빼미족들이 많이 있었다.
맘 카페에는 거의 초 단위로 새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의 내용은 무섭다거나
정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베란다 샤시에 대해서는
창틀에 우유갑이나 신문을 끼워야 한다는 글이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유리가 깨질 수도 있기에 창 근처로 가지 말라는 조언이 더 많았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유리창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고,
창틀 근처 침대 위에서 자는 가족들을 침대 밑의 안전한 벙커(?)로 이동시켰다.
실외기가 돌다가 무슨 일이 날까 싶어 에어컨은 켤 생각도 못했고, 선풍기만 살살 돌려서 가족들이 덥지 않게 신경을 썼다.


누워서 잠잠히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내가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렸다.


신식 아파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과 언니는
일단 괜찮을 것 같았고,
주변에도 크게 걱정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치킨집을 운영하는 아이의 친구네 아버지가 문득 걱정이 되었다. 보통 새벽 2-3시쯤 퇴근을 한다고 했었는데, 강풍이 불던 그 시간과 딱 겹쳤다.
웬 오지랖인가 싶다가도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결국 메시지를 남겼다.
가족 모두 괜찮냐고...
아침이 되어서야 답이 왔다.
별일 없다고...ㅎㅎ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고,
완전히 눈을 뜬 여섯 시경부터는 바람도 훨씬 약해져 있었고, 비도 이미 그친 뒤였다.


자연의 노여움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아무리 걱정을 해도,
아무리 대비를 해도,
결국 자연의 노여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잘난 척하고 살았던
내 작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위력이 강한 태풍 한 번만으로도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내가 누리던 것들은 단번에 잃을 수 있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자연을 마주하며 다시금 깨달았다.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양 주먹 가득 움켜쥐고 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도,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어
오늘 아침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짚어가며
아이와 함께 산책을 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나뭇가지를 보며,
아이는 환경미화 아주머니들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했고,
뿌리가 뽑힌 나무를 보고는 불쌍하다는 말을 하며,
이제 그만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한참이나 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더 겸손하게 살아야지,
더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리고 환경을 더 지켜주며 살아야지...
하는 온갖 착한 마음이 머릿속을 채운다.





2020년 9월 3일 태풍 마이삭을 만나며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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