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리 아이가 겁쟁이가 된 이유

by 다니엘라


일요일 밤이다.
월요일을 앞두고
아이와의 밀당이 있는 밤이다.

“엄마 내일 태권도에 안 가면 안 되나요?”
“엄마, 내일 학교 앞에 꼭 데리러 오실 거죠?”

매주 월요일이면
엄마가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도 안다.
엄마와 함께 지내 본 몇 주 간의 월요일을 기억하며
아이는 월요일만 되면 어떻게 해서든
엄마와의 시간을 확보하려 한다.


5월, 6월.
대략 두 달쯤 아이와 월요일 오후를 보내보니
그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즐겁지가 않다.
(엄마 사람의 솔직한 마음.)
유일하게 쉬는 날인데,
청소하고 책 좀 보거나 글 좀 쓰다 보면
금방 아이를 데리러 나가야 한다.


7월부터는 월요일 데이트 없이
태권도 학원에 잘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도,
또 일요일 밤이 찾아오니
아이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엄마와의 시간을 갈구한다.


‘이래서 되겠나..’
하는 마음 절반,
‘시간이 있고, 아이가 함께 보내고 싶어 할 때 함께 보내지.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갖겠나.’
하는 마음 절반으로
잠시 고민을 한 뒤 결정을 내린다.

“그래 8월까지 월요일에는 쉬자. 그냥 같이 있어.
대신 엄마가 엄마 일을 해야 할 때는 너도 협조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엄마!” (빙그레…….^^)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잠자리에 누워 조심스레 나를 부른다.
“엄마…아….”
“내일 학교 앞에 데리러 나올 거죠?”
2학년이 되어 월요일이면 늘 아이를 데리러 나갔었다.
1학년 때는 혼자서도 잘 오가던 길을
2학년이 되어서 늦깎이로 혼자 다니지 못하게 된 이유가
과연 무얼까 궁금해졌다.
대체 이 아이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대로 아이가 두려움에 휩싸여 지내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밤이지만 아이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에게 두려움을 주는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했다.
“이삭아, 학교에서 왜 혼자서는 올 수 없는 거야?”

“너무 무서워요.”

“뭐가 그렇게 무서워?”

“……”
“나쁜 사람이 잡으러 올 것 같아요.”

“응?”

“안전교육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아저씨가 와서 저를 데려갈 것 같아요. 흐윽 흐윽 흑흑…” (울먹울먹)

“아이고. 그랬구나.
그런데, 안전교육은 너희들에게 호~옥시라도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르쳐 주는 수업이야.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날 거라서 알려주는 게 아니라. 몇천 명 중에 한 명에게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일에 대한 대처법을 그저 알려주는 거야. 학교는 너희에게 그런 위험까지도 알려줘야 하는 곳이거든. 너희를 무섭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가르쳐 주는 것뿐이야.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정말 정말 정말 낮은 일이야.”

아이가 아는 주변 사람의 이름을 수도 없이 끌어다가
그 사람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아무도 납치를 당해 본 적은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설사 일어난다 하더라도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외치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알겠어요. 이제 그만 자요 엄마.”
하며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했다.
‘그냥 잘 수는 없지!’
아이에게 짧지만 굵게 기도를 해 주었다.
아이의 마음을 채운 두려움이 떠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이의 마음에 담대함을 더해 주시라고 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를 재우고는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이 꼬마의 마음에 어쩌다가
이렇게 큰 두려움의 덩어리가 들어앉게 된 걸까?
누가 이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어렵게 만든 것일까?


우선 우리 아이는
기질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가 틀림없다.
그러다 보니 같은 영상을 보아도 잔상이 많이 남는다.
특히나 공포를 연상하는 장면이나 자극적인 장면들은
아이의 마음에 오래오래 남게 되는 듯하다.


지난해, 코로나가 처음으로 터지고
온라인 수업을 한창 듣던 때였다.
아이와 함께 안전교육 수업을 듣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발아래에 큼지막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아이를 납치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함께 보는 나의 마음에도
가볍게나마 공포의 물결이 스쳤다.
안전교육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모자가 좀 그렇다는 거다.
내가 워낙 겁이 많았고,
여전히 겁을 쉽게 집어먹으며
우리 아이 역시 일정 부분 나의 모습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사고를 조금 더 확장해 보았다.
아이를 길러온 나의 양육태도나
언어습관에도 미숙함이 있었다.


나라는 엄마는 유독
“위험해, 조심해, 다쳐, 무서운 거야!”
하는 ‘두려움’이 내재된 말들을 많이 해왔다.
내 안의 공포를 은연중에 아이에게 전달해왔던 것이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내가 조금 편하게 육아하고 싶은 마음에
무분별하게 겁을 주는 말들을 쏟아내 왔던 것이다.
아이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많은 아이였고,
덕분에 조심성도 많은 아이였다.
평생을 살며 깁스 한번 해 본 적 없고,
크게 넘어져 본 기억도 없다.
한번 정도 강당에서 넘어진 부끄러운 기억이 있긴 하지만,
위험한 곳에서
위험한 상황에서
넘어지거나 다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미리 조심했고,
위험하다 싶은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내가 낳은 아이들 역시
내가 느끼는 그 위험에 노출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나의 양육방식은 정답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나의 불안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겨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니까.


미국의 가정 치료사인 케빈 르먼이 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 되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현실 훈련’을 시키라고 말한다.


걱정 말고 아이가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라.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자존감에 상처를 받을까 봐 염려한다. 그래서 속이고, 규칙을 바꾸고, 자녀가 실패하지 않은 척하고 혹은 새로운 것은 절대 시도해 보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실패로부터 자녀를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 죄책감 때문에 오히려 더 잘못된 결정만 내리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아이들이 실패할 수 있는 것, 실패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랑으로 자녀를 품어주고 그가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보여주되, 아이의 실패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 부모의 임무는 자녀를 결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 하여금 행동의 결과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현실은 위대한 교사며, 현실로부터 배운 교훈은 자녀들의 평생에 계속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 되기 p.16


여기에서 예로 든 것은 실패에 관한 것이지만,
비단 실패만의 문제는 아님을 우리는 안다.
아이가 도전하게 하고,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아픔도 겪어보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익힐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양육 방법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몰랐다.
부모가 되긴 되었지만
어떤 방식이 맞는지
어떤 게 아이에게 더 이로운지를 잘 몰랐다.
처음부터 서툰 엄마였고,
여전히 서툴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살고 있었다.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마침 요즘 읽고 있던 책을 통해
나의 양육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드디어! 얻게 된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지구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말로 온 지구가 발 벗고 나서서
나와 우리 아이를 돕고 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이, 그리고 생각들이
번개처럼 번쩍번쩍 튀어 오르며 다가온다.
책에서는 현재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고,
독서 모임에서는 ‘불안’이라는 주제로 책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더한다.
게다가 시기적절한 어릴 적 나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알게 된다.


이 땅에서 8년 남짓 살아온 나의 작은 아이에게
슬금슬금 상처를 내고,
찔끔찔끔 두려움을 심어준 것도
결국 나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과
아이가 나아지길 기다리는 마음이 참 어렵다.
난 뭐든 빨리빨리 해결되는 게
늘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나에게는 아이를 기다릴 의무가 있다.
아이의 회복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의도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이에겐 마음의 생채기가 이미 생겼다.
이제는 정말 더 느긋하게 바라보며
가끔은 후시딘을 발라주고
아이가 상처를 회복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을 해야 될 때가 되었다.


아들,
괜찮아.
엄마가 끝까지 기다려 줄게.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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