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허용이 있어야
진짜 ‘금지’를 배웁니다.
-‘금쪽같은 내새끼’ 오은영 박사-
아파트 광장 한 켠의 1미터쯤 되는 높이의 담벼락에서
아이의 친구가 신나게 뛰어내린다.
아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고,
아이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아이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살며시 입가에 띄운 뒤
담벼락을 살금살금 조심스레 기어간다.
‘여기 안전 한 곳 맞지?’ 확인이라도 하듯
아이의 움직임에는 조심성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아이의 얼굴에는
엄청난 모험에 도전하는 사람 특유의,
성취감마저 감도는 미소가 잔잔히 깔려있다.
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양팔을 벌린다.
그러곤 친구들을 향해
“얘들아 이거 잘 봐봐!”
하더니 ‘파다닥’ 뛰어내린다.
성공이다!
아이는 어깨를 활짝 펼치고 만면에 미소를 채운다.
내 아이는 이런 아이다.
조심성이 많고 섬세하지만,
즐거워 보이는 일이라면
조심스레 도전할 줄 아는 아이다.
아파트 광장에서 아이는
스스로 해도 되는 일인지를 판단했고,
스스로 안전을 챙겼으며,
스스로 뛰어내리며 성취감을 얻어냈다.
이전의 나였다면,
“오오! 조심해 조심해!”
하며 아이 곁을 맴돌았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를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일을
훈련하는 중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일,
허용해 주는 일,
이 모든 것은 나에게만큼은 혹독한 훈련이다.
워낙 조심성이 많고 겁도 많은 나는
아이에게 허용해 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내가 그어주는 선 안에서만
아이가 잘 지내주기를 바랐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첫 아이를 얻고 몇 년 간
그게 맞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켜왔다.
아이가 차츰 독립을 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
그것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독이 되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늦게나마 알게 된 지금은
어긋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지나온 날 만큼의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중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우리 아이는
아직도 ‘홀로’ 있는 것을 편안해하지 않는다.
늘 엄마가 함께 였으면 하고,
친구들과 함께이기를 바란다.
아이는 매주 목요일이면
태권도 학원으로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날은 학원 차량에서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내리는 날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차에서 내릴 동안
혼자서 학원 차량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그게 어렵다고 했다.
홀로 있을 때의 감정이 ‘무서움’을 닮아 있다고 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목요일이면 학원까지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그러던 중 아이는
스스로 다시 학원차를 타 보겠다는 선언을 했고,
그렇게 2주 동안
아이는 학원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던 아이가 또다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 다시 목요일에 데리러 와 주실 수 있어요?”
얼마 전 읽었던 책인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 되기]에서
언급한 현실 훈련을 드디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선 아이와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부분이 무섭게 느껴지는지, 왜 그런 것 같은지…
아이는 그 무서움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홀로 차에 앉아 있는 것이 그저 무섭다고만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아이에게 이 세상의 안전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이모, 이모부,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 아빠, 작은엄마,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 교회 형아들..
아는 사람들을 최소한 20명은 끌어들였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꼽아가며
그 사람이 살아온 몇십 년 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형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남은 건
차에 혼자 있더라도 누군가가 해치지 않았다는 거야.
그 형이 혼자 길을 가더라도
누군가 다가와서 해치지 않았다는 거야.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도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모두 달려와 도와주었을 거야.”
“엄마도 그렇거든,
엄마도 어린아이가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모르는 아이더라도 다가가서 도와줄 거야.
그건 너무 당연한 거야.
어른들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 너희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안심해도 괜찮아. 그건 확실해.
그리고 이삭이가 다니는 길은 대부분
너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들이잖아.
원플러스 마트 사장님도 너를 알고,
리리코 음악학원 선생님도 너를 알고,
꽁스 헤어 이모도 너를 알잖아,
게다가 마이마이 치킨 사장님은 준현이 아빠잖아.
너를 몰라볼 사람은 없어.
부동산 사장님도 길 건너에서 볼 수 있을 거고,
크린토피아 사장님도 항상 문밖을 내다보고 계신다고.
거기다가 진동 공원 앞에 있는 아파트 오층에는
예빈이 누나네가 살잖아.
모두 너를 지켜볼 수 있고,
너를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안심해.
한번 도전해봐.
혼자 차에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거야.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도 할 수 있고….
이번 주 한번 더 차를 타 보자.”
“그렇구나…. 그건 잘 알겠어요.
그럼 엄마, 저 이번 주에는 차 말고 혼자서 집까지 걸어와 볼게요. 대신 엄마가 우리 아파트 통로 아래에 내려와 있어 주세요.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요.”
예상했던 레퍼토리는 아니었지만,
아이는 두려움을 격파하기 위해 ‘홀로 걷기’를 선택했다.
어떤 방법이 더 편안할지,
어떤 방법을 통해 자신을 독립시켜 나갈지
아이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
아이는 약속대로 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그렇게 한 가지 경험을 더 쌓아 올리며
자기 안의 두려움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내해 줄 때마다
아이 눈빛을 스치는 두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은 엄마가 먼저 나설 때가 아니다.
방향을 안내하되 기다림이 필요한 때다.
‘허용’이라는 두 글자를 건강하게 활용하여
아이 스스로 두려움을 다루어 가도록 지켜보기로 한다.
모든 게 처음인 엄마는 마음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많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노심초사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글로 옮긴다.
우리의 ‘엄마와 아들’ 이야기가
조금 더 편안해질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