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혼낸다'라는 표현을 지워버리세요.
'혼낸다'라는 표현이 없어도
아이를 키우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그 표현이 없다고 버릇없는 아이가 되지 않아요.
'혼낸다'라는 표현 대신
'가르친다'라는 표현을 쓰면 됩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오은영) p.24
혼낸다는 표현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온몸으로 겪어내는 중이다.
혼낸다는 표현을 지우기 전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이 말을
어찌 막아낼지부터가 큰 고민이다.
‘육아’와 ‘혼냄’이 서로 얼마나 의지하며
지금까지 왔는지
서로 얼마나 야무지게 붙어버렸는지
둘을 떼어내려고 보니 알 것 같다.
‘혼내는 엄마’의 곁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입에서도 ‘혼낸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테면,
“엄마, 형아가 이렇게 했어요. 형아 혼날 거예요?”
“엄마 저렇게 하면 혼나는 건데, 그쵸?”
아이들을 키우며 ‘혼내지 않을’ 자신은 없다.
오색찬란한 감정을 가진 엄마라는 사람이
어찌 매일 방글거리기만 할 수 있을까?
어찌 매일 이성적이기만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약속은 글에서 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혼낸다는 표현만큼은 살살 지워내고 싶다.
혼낸다는 말 말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말로 바꿔주고 싶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가르친다’는 말로 바꾸고 싶다.
조금 더 부드럽게 가르치거나
조금 더 명확하고 또렷하게
가르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얼마 전의 일이다.
온 식구가 함께 차를 타고
남편의 안경을 수리하러 가는 길이었다.
두 아이는 할아버지가 작은 아이에게 사 주신
동그란 고무딱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고무딱지를 가지고 있으면
형이 그걸 빼앗으며
서로 마주 보고 깔깔거리는 놀이였다.
처음에는 분명 두 아이 모두
초승달 눈을 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형이 딱지를 빼앗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빼앗은 딱지를 의자 틈으로 감추는 퍼포먼스까지 추가되자
동생은 애원하듯 “안돼! 안된다고!”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얘들아 빼앗는 건 그만두자.
형아야, 동생이 싫어하는데 이제 그만해!”
이 한마디로 아이들이 조금 잠잠해지기를 바랐다.
모두가 해피하게 이쯤에서 상황이 진정되길 바랐다.
두어 번을 더 자제시켰다.
그러나,
“안돼애~~~~~~! 으아아 앙~~~~”
둘째는 딱지가 영원히 사라진 것 마냥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울기 시작했고
첫째는 계속해서 딱지 감추기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철썩철썩!’
결국 큰아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야 말았다.
큰아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이삭아, 동생이 싫다고 하잖아.
싫다는데 왜 자꾸 하는 거야?
네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장난을 받는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만해야 하는 거야.
상대방이 싫다고 우는데도 계속하는 건
폭력이야. 알겠니?”라고 ‘폭력’을 가르치며
‘폭력’을 행사해 버렸다.
아이에게 안 되는 거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아이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아이의 등과 나의 손바닥이 강하게 마찰하는 순간
사실은 더 이상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혼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혼내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
참을성 부족한 엄마인 나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늘 이성적일 수야 없겠지만,
비이성을 넘나드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늘도 차분히 마음을 글로 옮겨본다.
나는 오늘 다시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내 아이들 잘 되라고 하는 일들이 아니었던가.
불필요한 노여움을 줄이고
혼내야 했던 일들을
가르치는 일들로 바꾸어보기로 마음먹는다.
부모를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아이들이
날카로운 혼냄 보다는
사랑과 인내가 담긴 가르침을 통해
더 건강하게 자랄 것을 믿는다.
그렇게
오늘도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심기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