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이렇게 늦게 깨웠어요!
엉 엉 엉…”
“무슨 소리야~
엄마가 너를 20분이 넘도록 깨웠는데!!!”
“아니잖아요. 그건 장난으로 깨운 거잖아요.
진짜로 깨워야지요! 엄마 나빠요!!”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엄마가 엄마 새벽시간 쪼개서 깨웠더니
고작 한다는 말이 엄마 나쁘다고?
내일부턴 그냥 혼자 일어나!”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엉엉엉…”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고 싶은 아이를
조금 느슨하게 깨운 날이었다.
그래도 20분 이상 시간을 들여 깨웠고,
아이는 잠결에 부스스 웃기만 하다가
결국 6시 25분쯤 눈을 떠서 거실로 나왔다.
본인이 예상했던 시간(6시 정각)이
아닌 것을 시계를 보고 확인을 한다.
그러더니 이내 울상이 된다.
왜 제시간에 깨우지 않았는지를
엄마에게 따져 묻는다.
아이는 사실은 잠도 덜 깨고 괜히 짜증이 나서
짜증을 낼 만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시간에 깨우지 않은 엄마가 타깃이 된다.
하지만 엄마 역시
마음 넉넉하게 받아 줄 상황이 아니다.
여섯 시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던 글쓰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마음은 급한데,
아이를 깨우느라 20분이나 들락날락하며
시간을 공중에 날려 보냈다.
이미 마음이 바쁠 대로 바빠져 있는데,
아이까지 엄마를 탓하기 시작하니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받아줄 리가 없다.
내 아이가 ‘배은망덕 한 놈’이 되기까지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엄마는 아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
주거니 받거니
별 소득도 없는 원망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울 때, 왜 우리는 아이도 아니면서 어쩔 줄 모르고, 불편해하고, 못 견딜까요?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떠안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이 때론 잘못되었어도 그 사람 것이에요. 그 감정이 나를 향한다며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고, 자꾸 눈물이 나오는구나. 실컷 울어. 괜찮아. 다 울 때까지 기다려줄게. 다 울고 나면 그때 이야기하자."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p.51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에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감정이 내 것인 양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기다려 줄 것을 제안한다.
지나치게 과장되게 달랠 필요도 없고
아이와 같이 감정이 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종종 아이의 감정을 너무 깊이 흡수해 버리곤 한다.
아이의 감정이 내 것인 양
아이가 짜증을 내면
그것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고,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 내 마음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아이의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늘 어렵다.
아이의 감정과 나의 것을
분리하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감정에 아이의 감정까지
한꺼번에 흡수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곤 한다.
아이와 감정을 분리하고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고
오은영 박사의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게 이론처럼 쉬울 리가 없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 줄 만한,
혹은 아이의 감정을 나의 것과 분리해서
바라봐 줄 만한 여유가 필요하다.
부모의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아이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힘이 생긴다.
오늘도 비슷한 새벽을 맞는다.
아이보다 한 시간 반쯤 먼저 일어나
키보드에 두 손을 얹는다.
6시 정각.
아이들이 곤히 잠든 방으로 건너가
큰아이를 살살 깨운다.
지난밤 아이가 부탁했던 대로
간지럼을 태워 아이를 깨운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삭아 여섯 시야.”
하고 알려준다.
아이는 결심했던 대로
큰 어려움 없이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웃는 얼굴이다.
엄마도 오늘은 감정의 여유를 품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웃기까지 해 주니
시작이 좋다.
오늘 하루
관대한 부모가 되어보기로 마음을 다진다.
어제는 감정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오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엄마라면
괜찮은 거다.
오늘 다시 일어날 힘을 품고 있다면
또 그걸로 괜찮은 거다.
번거롭기 짝이 없고
뒤만 돌아서면 사건이 터지는
육아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이 번거로움 마저도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이 그리워질 그날을 생각하며
오늘의 육아에 감사하고,
후회 없는 관대함으로
아이들을 품어주는 하루를 맞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