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매일 글쓰기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려고 한다.
내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조금 더 겸손해 보이는 공손체를 할까 하다가,
늘 쓰던 문체로 쓰는 것이
글쓰기 말달리기에는 이미 최적화된 것 같아서
늘 하던 데로 가벼운 독백체로 쓰기로 한다.
꾸준함이라는 걸 잊은 지 오래된 내 인생에
다시 꾸준함이 자리를 잡았다.
매일 꼬박꼬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글을 쓴 지 일 년 반쯤 되었을까?
아니 이제 곧 2년을 채운다.
오늘은 매일 글을 쓸 수밖에 없어진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려 한다.
매일 글을 쓰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매일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해져 버렸다.
‘쓰긴 쓸 건데, 매일 쓰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라고 했던 내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국어책에 나올 법한 순이 엄마 같은 평범한 나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틀림없다.
시작은 역시,
‘매일 한번 써 봤니?’의 김민식 작가님과
‘스몰스텝’의 박요철 작가님이었다.
꾸준한 매일의 글을 모아 책을 한 권 엮게 된
김민식 작가님과
매일 세줄 일기로 삶의 태도와 상황이 바뀌어진
박요철 작가님을 보며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작은 씨앗이 움텄다.
그리고 거기에 움직임을 부추긴 건 남편이었다.
나보다 먼저 스몰스텝 책을 읽은 남편이
‘스몰스텝’의 매력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매일 조금씩’이 주는 부담 적은 동기부여가
우리 남편을 움직이게 했고,
남편은 나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첫 움직임은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 일이었다.
이전에도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읽지만 말고
읽고 괜찮았다면
조금씩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띄엄띄엄 독서 기록을 남겼다.
짤막한 느낌과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남편의 끈질긴 설득으로
스몰스텝 글쓰기 오픈 채팅방인
‘황홀한 글감옥’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황홀한 글감옥은 시즌제로 운영되는
매일 글쓰기 협동조합(?)이다.
3주간 매일 글을 쓰고
쓴 글의 링크를 황홀한 글감옥 채팅창에
공유를 하면 그날의 글쓰기는 완료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내 글을 공개하는 것도 어려웠고,
자정이 되기 전까지 매일 글을 한편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매일 인증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과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는,
잘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내면의 소리 때문에
첫 문장을 시작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다른 사람은
나만큼 내 글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우선은 잘 쓰지 않아도 매일 쓴다는 것이 중요했다.
좋은 글이든, 똥글이든 그저 쓰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하나는,
소통의 힘이었다.
‘황홀한 글감옥’ 오픈 채팅방에 참여하며
블로그 이웃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관심을 표현해 준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들과의 소통의 즐거움 때문에
블로그라는 매체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이웃들의 글을 읽고,
매일 내 글을 써내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황 글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오랜 이웃으로 지내고 계신 분들도 있다.
매일 글만 썼는데,
소중한 인연까지 얻게 되었다.
마지막 하나는,
매일 읽어주는 애독자 한 명이 나를 살렸다.
나의 모든 글을 읽고
글에 대한 소감을 나누어주는 이가 있다.
남편이다.
글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도 남편이었고,
피드백을 담당해 주는 것도 남편이었다.
‘황홀한 글감옥’에서 함께 글을 쓰기도 했다.
글태기가 와도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남편이 있어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2019년 초겨울부터
매일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내가 매일 글을 쓰며
작은 변화의 물결들이 일어났다.
가끔은 글쓰기 공모전에도 참가를 해 보고,
좋은 생각 월간지에 글이 실리기도 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범한 아들 둘 맘도
그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워킹맘이라면서요.
시간은 어디서 났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 시간’이라는 것이
공짜로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는
나만의 5분 조차도 너무나 절실했다.
이제는 두 아이가
콩나물처럼 착실하게 자라줘서
아홉 살, 다섯 살이 되었다.
(할렐루야!)
첫아이를 가지며 경력이 잠시 멈추었고,
늘 아이들 곁을 지키다
2년 전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근무시간은
아이들이 기관에 보내져 있는 시간만큼만.
9시 30분 출근에 오후 3시 퇴근이다.
육아맘 때도 그랬지만,
워킹맘도 여전히 내 시간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시간’은
새벽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곤히 잠들어
나를 절대 방해할 수 없는 유일한 시간이
새벽 시간이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아이들을 재운 밤 시간을 활용하기도 했다.
갓난쟁이가 새벽 수유를 위해
언제 깨어날지 몰랐기에
아이들이 어릴 땐 밤 시간을 활용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고
새벽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냈다.
다섯 시쯤 눈을 떠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글을 쓰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다.
요즘은 첫째 아이가 새벽 6시면 기상을 한다.
엄마 아빠를 보며
자기도 새벽 시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겠다니
굳이 말리지 않았다.
우리 집 새벽 룰은
일곱 시까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이른 기상으로
시간의 활용도가 많이 떨어졌다.
결국 기상 목표 시간을 새벽 4시로 앞당겼다.
실제로는 4시~4시 30분쯤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곧바로 책상으로 가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펼친다.
전날 미리 사냥해 둔 글감으로 글을 쓰거나
새벽의 고요함을 즐기며 글감을 찾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새벽 기상 - (화장실) - 글쓰기
패턴이 이제는 완전히 몸에 배어
다음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도 움직인다.
새벽이라는 덩어리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확보해
매일 글을 써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도 백분 활용한다.
아이 숙제를 봐주며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잠시 갖는 오전 시간에는 집 정리를 한다.
그리고 혹여나 그날의 글을 오전에 쓰지 못한 날은
아이들이 아빠와 잠들 수 있도록 돕고
홀로 거실에 앉아 글을 마무리 짓는다.
결국 나에게 맞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단 30분 만이라도 좋다.
새벽 기상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새벽 기상을 무리해서 하게 되면
수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천천히 시작할 것을 권한다.
매일 10분씩 기상 시간을 당긴다거나,
2주에 30분씩 기상 시간을 앞당겨
서서히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형 뽑기를 해 본 적이 있는가?
괜찮은 인형을 건져낼 때 단 한 번만에 퇴출구까지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괜찮은 인형을 발견하면
그것을 몇 번이나 집었다가 떨어뜨리며
서서히 퇴출구로 가까이 가져와 결국 손에 쥐게 된다.
우리가 습관을 손에 넣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내 것으로 만들되
단단하게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여전히 평범한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들고,
반짝이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는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