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초단편소설
슷. 스스슥.
‘방금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데…’
주방 바닥을 가로지르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인지함과 동시에, 차라리 내 눈에 띄지않고 스쳐 지나가 주길 간절히 바란다. 바라보아야 할 방향은 외면한 채 속으로만 되뇐다.
‘분명 무언가 지나간 것 같은데… 설마…’
애꿎은 걸레만 만지작 거리며 고개 돌리기를 망설인다. 연보라색 걸레의 한 귀퉁이에 삐져나온 실오라기가 손가락을 걸고 당기기 좋게 자리를 잡았다. 평소라면 지체 없이 주방으로 가 주방용 가위를 꺼내 실오라기를 단숨에 정리해 주었겠지만, 오늘은 좀 어렵겠다. 아무래도 작은 불청객이 찾아든 것 같으니… 주방까지 걸어갈 용기 따위가 생길 리가 없다. 한참을 꼿꼿이 서서 걸레의 실오라기를 당겨 뱅뱅 돌리고 있자니 주방 바닥의 검은 손님이 슬슬 궁금해진다.
‘지금쯤 지나갔겠지… 제발 제발 지나가 주었기를!!’
눈 주변의 근육을 그러모은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작은 실눈을 만들어 사물의 존재 유무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특화된 눈으로 만든다. 이번에는 마음을 모은다. ‘분명 지나갔을 거야. 틀림없이 지나갔을 거야. 제발 지나가 주었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살핀다.
보인다.
무언가 보인다.
실눈의 비현실적일 만큼 작은 틈으로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거무튀튀한 것이 그림처럼 멈춰있다.
녀석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만찮은 녀석이다.
문득 15년 전쯤의
대학 기숙사 방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작은 방 한쪽면은 특색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네모난 기숙사용 침대 두 개를 길게 나란히 두었고 반대편 벽면에는 마찬가지로 칙칙하고 밋밋한 나무색의 책상 두 개가 놓여 있었으며 바로 곁에는 작은 욕실이 딸려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이면 룸메이트와 각자의 침대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같은 학과 남학생에 관한 이야기나 학과의 빅뉴스, 또는 그날의 급식 메뉴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날은 기숙사 급식실의 저녁 메뉴가 냉모밀로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메밀 면이 떡져서 덩어리가 되기 전에 배식받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몇 시에 급식소로 향할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룸메이트의 눈을 스친 공포감을 읽어버렸다.
“저기. 뭐가… 있어….”
지체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악!!! 바퀴벌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자주 보던 그 바퀴벌레다.
틀림없다.
다음 동작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책상에 놓여 있던 잡지책을 들어 올려 원, 투, 쓰리 “촥!” 바퀴벌레의 반짝이는 등짝 위에 정확히 내던졌다. 그리고 확인사살. 잡지책 위로 올라서서 가볍게 밟아주었다. ‘바스삭. 딱.’ 기분 나쁜 확인 사살의 멜로디가 귓가에 스쳤다. 다음 동작은 잡지를 들어 올려 바퀴벌레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일인데, 도저히 바퀴벌레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이틀을 방치해 두었다. 잡지책을 피해 다니며 이틀을 보냈다.
사흘 째 되는 날, 과자파티를 핑계로 옆방의 친구를 초대했다. 그리고 과감한 친구의 손을 빌려 사흘간 뭉개져 있던 바퀴벌레와 잡지책을 처분했다.
기숙사 바퀴벌레 사건 이후 ‘바스삭. 딱’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바람에 언제 어디서든 바퀴벌레를 만나면 내가 피하는 쪽을 택했다. 바퀴벌레에게 길을 내주고 내가 자리를 뜨는 쪽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 잡아내거나 때려눕히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소극적이지만 나름 합리적인 태도로 바퀴벌레와의 간격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오늘, 여기.
내가 애정을 갖고 살림을 살아내는 내 주방에
검은색 불청객이 찾아든 거다.
오늘도 그저 조용히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5년 전의 손맛을 다시 소환해야 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더 이상 후진은 없다.
식탁에 놓인 아이의 동화책 한 권,
그리고 지지부진하게 읽고 있는 글쓰기 책 한 권.
어느 것을 무기로 할지 잠깐을 망설인다.
그리고 표면적이 넓은 동화책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실눈을 풀어 제대로 된 사물의 정체를 밝혀낸다.
…….
까아만 비닐봉지의 파편.
…….
어딘가에 놓여 있던 비닐봉지 파편이, 뒷베란다의 문을 닫으며 일어난 바람에 날려 주방을 가로지르는 곤충의 모습을 재연했던 것이다.
까만 비닐봉지 한 조각에
소설을 한편 쓰며
황금 같은 오전 시간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