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다툼 이야기
아내가 이상하다.
달걀 모양의 얼굴에
언제나 봄 같은 미소가 깃들어 있는 사람인데,
최근 아내의 얼굴은
내가 아는 그 얼굴이 아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울산으로 이사 와서
아내가 첫째 아이를 홀로 돌보던 때,
그리고 둘째 출산 후
두 아이를 돌보며 집을 지켰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얼굴이다.
아니 조금 더 생각하다 보니,
집안이 난장판일 때도 그 얼굴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 비슷한 얼굴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아내 얼굴에 늘 흩뿌려져 있던
설탕 같은 웃음과 기쁨은 사라지고
그곳을 짭짤한 소금끼가 꽉 채운 느낌이다.
‘뭔 일이래.’
새벽 네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달그락, 톡트륵, 퐈아아 촤- 탁탁. 턱.”
지난밤 우리 부부가 미처 끝내지 못한 설거지를 시작한다.
새벽 설거지를 거르면
아내는 출근 전 아이들의 등교, 등원 준비에다가
설거지에까지 에너지를 펼쳐야 한다.
아내가 혹여나 출근 전 설거지를 끝내지 못했더라도
아내는 오전 내내 설거지 생각만 하며 아쉬워할 터다.
아내는 내가 잘 안다.
좋아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나
CFA강의, 또는 영어 강의,
그것도 아니면 오디오북을 들으며
설거지를 끝낸다.
설거지가 끝날 때쯤이면 아내가 힘겹게 눈을 비비며 나온다.
미소를 주고받으며 아침 인사를 나누고
아내도 기계적으로 책상에 앉아
글쓰기를 시작한다.
바쁜 오전을 보내고 허그까지 주고받으며 출근길에 나선다.
시작이 좋다.
아침부터 아침답지 않은 뜨거운 공기가 훅훅 끼치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웃으며 나설 수 있게 바라봐 주는 가족이 있어서다.
근무 중에도 아내와 틈틈이 카톡으로 안부와 잡담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이어간다.
오후 네시 이후,
아내와의 카톡 연락이 원활하지 않다.
아내의 집중 육아 시간이다.
한참을 기다려 올라탄 버스에 서서
정신없이 꾸벅거리다 보니 내려야 할 정류장이다.
10여분을 더 걸어 마침내 오후 내내 그리던 집으로 들어선다.
두 아이가 아기 원숭이처럼 달려 나와 매달린다.
“아빠, 선물 없어요?”
그럴 줄 알았지.
회의 때 안 먹고 남겨온 쿠크다스 두 개를 꺼낸다.
커피맛인데, 에라 모르겠다.
“우와! 우와! 아빠 고맙습니다.”
다행이다. 성공!
아내는 벌써 반쯤 녹초가 되어 있다.
아내가 실잠자리의 실루엣을 닮은 눈을 만들어 웃어 보이고는 금방 주방으로 간다.
오래오래간만에 어른 반찬이다!
오징어 볶음.
늘 아이들 반찬 위주로 먹곤 했는데,
나야 뭐 샐러드 식을 자주 하는 편이라 불만도 없었지만,
그래도 오래 간만에 어른 반찬이 나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까지도 잘했는데,
아내가 슬슬 조바심을 낸다.
“이삭아 어서 일기 쓰고 자야지. 아까 덜한 숙제도 한 장 마저 끝내고, 응?”
“여보, 아이들 여덟 시 반에 침실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무리 봐도 여덟 시 반은 힘들 것 같은데 아내는 고집을 앞세운다.
완전한 동의도 반대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잠깐 들여다봐야 할 업무 메시지를 본다.
답장도 하고 이것저것 몇 가지 일을 휴대전화로 해낸다.
궁금했던 스포츠 스코어들도 확인을 한다.
아, 잠깐…
이상하다 뒤꼭지가 너무 따갑다.
아내의 눈길에서 쏟아져 나오는 레이저 빔이 유난히 강렬하다.
“여보, 좀 도와줘요.”
다시 웃음기 사라진 그 얼굴이다.
그 낯선 얼굴.
냉전 시작을 알리는 얼굴이다.
묻는 말마다 입도 뻥끗 안 한 것 같은 단답형 대답이 이어진다.
눈치껏 움직인다.
심적으로 조금씩 피로감이 더해져 온다.
형제님들 치카치카를 돕고,
아무래도 오늘은 동화책 읽기도 내 몫인 것 같다.
건조한 얼굴로 집안을 살피는 아내를 피해
아이들과 꿈나라 동화책까지 읽어낸다.
그리고…조… 금… 씩…… 시야가 흐려진다.
어디에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거나 다시 새벽이다.
아내는 여전히 말이 없다.
아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대화를 시도한다.
건조해진 아내의 낯빛을 어서 밝혀야 한다.
아내도 이 시간을 기다려 온 모양이다.
대화를 시작하고,
갈등과 설득이 오간다.
또다시 갈등이 오가는가 하더니
조금씩 상황이 호전된다.
한두 마디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끈질긴 대화의 끝에 서로의 마음을 녹여냈다.
그간 아내의 힘들었던 마음을 들어주었고,
그런 아내의 기대치가 못내 부담이 되었던 나의 속 마음도 털어놓았다.
다행이다.
아내가 다시 봄처럼 뽀얀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온순한 양이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하반기 첫 부부다툼은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남은 하반기에는 아내의 얼굴이 내내 반짝일 수 있도록
마음을 잘 살펴야겠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에도 여유가 편안히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 마음도 살펴가며 감정적으로 건강한 2021년 하반기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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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사춘기를 닮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아내가
남편과의 조막만 한 다툼과
복잡다단했던 몇 주간을 떠나보내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잠시 남편의 마음속에 다이빙하여
남편의 시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