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사랑으로 복수하기를

by 다니엘라


두 아들을 기르는 중이다.
아직은 아이들이 하루 동안 하는 말 중
가장 많이 반복하는 말이
“엄마”라는 말이기 때문에
여전히 기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기르는 일도 그렇지만,
아이들을 낳는 일도
처음 엄마가 된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째 아이 때는 무시무시한 3개월 간의
입덧을 겪었고,
둘째 아이 때는 입덧에 치골통을 겪었으며
거기에 첫째 꼬마 육아까지 더해지다 보니
10개월이라는 시간이
도깨비불처럼 빨리 지나가 주기만을 바랐다.


그럼에도 또 출산의 날에는
필요한 만큼의 진통을 겪었다.
수십 년 전 나의 엄마가 겪었던
열네 시간짜리 진통에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큰 아이 네 시간,
작은 아이 두 시간의 진통도 겪어보았다.


진통을 겪으며
‘네 이 녀석들,
오늘의 이 진통을 평생에 걸쳐 복수할 테다!’
하고 결심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가랑비에 물 젖듯이
진통의 시간들을 평생에 걸쳐
거기에다 이자까지 잔뜩 붙여
사랑으로 되갚아 주리라 결심을 했다.
일명 사랑의 복수.


아이가 어릴 땐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귀엽고 귀여운 맛에
열심히 사랑의 복수를 해 주었다.
안아주고 귀 기울여주고 눈을 맞추며
농도 짙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늘 그렇게 예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되어질수록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되갚아 주는 일이
소흘해지기 시작했다.


한번 이야기해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도끼눈을 했고,
두 번 이야기해서 움직여 주지 않으면
큰 목소리로 아이들을 짓눌렀다.
사랑의 복수라기보다는
훈련 조교의 사활을 건 군기잡기와
더 많이 닮아 있었다.


이 꼬마들을 만난 지
이제 겨우 칠 년 반,
그리고
사 년 일 개월이 지났는데…
‘사랑’ 딱 한 가지를 지키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사랑이야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마음보다는
앙칼진 목소리를 주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려주기보다는
타이머를 쥐어주고
빨리 더 빨리를 외치기 바빴다.


진심 어린 사랑을 나누는 게
이렇게 어렵다.
내가 힘드니까
아이들이 말을 잘 듣기를 바랐고
내가 나이 들어 걱정 없이 살고 싶으니까
아이들이 지금부터
자기가 할 일을 똑부러지게 잘하기를 바랐다.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보다는
내가 고생한 만큼,
그리고 내가 애쓴 만큼,
본전 돌려받기에 더욱 마음을 쏟았다.
'너희들'보다 '나'를 더 챙기고 있었음이
인증되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
사랑의 복수를 운운하며 글로 옮기다 말고
우리 집 두 아이가 아침을 여는 것을 도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따라주지 않는
둘째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은 아침부터
목청 데시벨 테스트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마음과 행동이 이렇게 다르다.


오늘 같이
아이들 앞에서 더욱 작아진 아침,
글을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글로 풀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덕분에 분만실에서 했던
'사랑의 복수'라는
그 약속을 기억해 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도
넘어지고 무너졌지만,
탁탁 털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내 고마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복수를 꽃피워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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