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한참 내던
첫째 아이가 “아~” 하고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방일의 분주함 때문에
아이의 한숨을 캐묻지 않고 하던 일을 지속했다.
아이는 알아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정말 추석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빨리 할아버지 댁에 가고 싶거든요.”
“어, 그렇지. 맞아 엄마도 그래.”
저녁을 차리는 일은 계속되었고,
아이의 이야기보따리도 쉴 새 없이 풀려 나왔다.
“엄마 그런데요,
이건 엄마가 슬퍼할 수도 있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미리 미안해요.”
“뭐길래? 미안해하지 말고 이야기해봐.”
“저는 사실, 서울 할아버지(친할아버지)가 더 좋아요.”
“에이~참~ 그게 뭐가 엄마한테 미안할 일이야?”
“포항 할아버지는(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빠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슬퍼할까 봐.
그럼 혹시 엄마는
서울 할아버지랑 포항 할아버지 중에 누가 더 좋아요?”
“엄마는 당연히 포항 할아버지가 좋지.
우리 아빠니까.ㅎㅎ”
“아… 나랑 다르네.
저도 포항 할아버지도 조금은 좋은데
서울 할아버지가 더 좋아요.
왜 그런지 알아요?
서울 할아버지는 우리랑 잘 놀아주시고
기운이 넘쳐 보이잖아요.
그리고 뭐 사주실 때도 많이 사게 해 주시고,
힘도 센 것 같고, 달리기도 빨라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 주셨잖아요.
그다음에… 음..
고릴라 마트도 데려가시잖아요.
이번에는 야놀자 문구점도 데려가신대요.
근데, 포항 할아버지는
놀아 달라고 하면
맨날 소현이 누나(사촌누나)랑 놀라고만 하시고,
별로 안 놀아주세요.
그리고 뭐 사러 가면
하루에 한 개씩만 사라고 하시고 그렇거든요.”
“그랬구나.
빨리 할아버지 댁에 갈 수 있게
추석이 얼른 왔으면 좋겠네.”
우리 자매에겐 최고의 아빠였던 외할아버지가
21세기 들어 왜 이토록 인기를 끌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어릴 적 아빠는
두 딸의 손을 붙잡고 산, 강, 바다, 들판 할 것 없이
데리고 다니셨다.
당연히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 주셨고,
슈퍼에 데려가 캔디바도 척척 사주시는 아빠였다.
달리기도 빨랐고, 힘도 넘치는 아빠였다.
어릴 적엔 해가 떨어질 때쯤이면
아빠의 퇴근 시간만 기다릴 정도로
아빠를 좋아했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우리 아빠!!)
가족들과 함께 여행과 캠핑도
자주 떠났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다.
이렇게 인기 있던 아빠가
손주들에겐 인기 없는 할아버지가 된 이유가 뭘까?
아마 육아에도 총량이 있는 게 틀림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육아의 총량이라는 게 있는데,
외할아버지는 육아의 총량을
젊은 시절 이미 다 써버린 것이다.
젊은 시절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빠가 가진 육아 에너지를
양껏 쏟아부은 것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빠는
퇴근 후엔 우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초저녁 놀이터 당번도 아빠였고,
식구들을 오래된 빨간 엑셀 자동차에 태워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언니와 나에게
솜사탕을 손에 쥐어 주시던 것도 아빠였다.
결국 아빠 편에 바짝 붙어서
아빠를 옹호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할아버지가 되신 아빠는
그저 육아의 총량을 다 써버린 것뿐이다.
아들이 또다시 외할아버지를 향해
아쉬움을 속삭일 때 이야기해 줘야지.
할아버지는 엄마 키우느라
‘육아 에너지’를 다 쓰셔서 그런 거라고,
사랑해 드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