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라 그래
김영사 / 양희은 에세이
양희은 이모님의 에세이.
연예인들은 양희은 씨를 양희은 선생님 이라고들 하던데 나야 뭐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은 어쩐지 너무 공경심만 잔뜩 담긴 것 같아서 친근한 느낌을 담아 양희은 이모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을 좀 했는데, 책의 제목도 ‘그러라 그래’인 마당에 뭘 또 고민하나 싶어서 도서관에서 마주치자마자 집어 들었다. 고민을 했던 이유는 가끔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고약한 습관 때문. ‘이 책을 읽었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에 대한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목적의식이 없는 독서도 분명 필요한 것을 알기에 먼저 들었던 마음을 살며시 내려놓고 읽기에 돌입했다.
양희은 이모는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노래를 부르며 만나지 못하는 팬들을 책으로 만나기로 결심했단다. 그렇게 엮어낸 책이 ‘그러라 그래’였고, 그녀는 지난 22년 간 ‘여성시대’를 위해서 썼던 원고를 참고하여 세월을 넘나드는 추억의 글도 자연스럽게 뽑아냈다.
이 땅에는 ‘뭘 해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뭘 해도 잘할 수 있는 고수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양희은 이모 역시 내가 꼽는 뭘 해도 잘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녀는 글도 참 잘 썼다. 덕분에 하룻밤 사이에 이모의 책을 삼킬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양희은 이모를 만나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돌아온 느낌이랄까. 책은 금방 읽혔지만 여운은 참 오래 남았다.
‘그러라 그래’는 양희은 이모의 눈과 마음에 스친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옮긴 책이다. 굴곡졌던 숱한 세월을 돌아보며 일흔이 된 지금,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나이먹음을 젊음과 바꾸지 않겠다는 선명한 마음을 글로 옮겨 두었다. 열심히 살아온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며,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라 그래’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뉜다.
-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 사실 노래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
- 어떻게 인생이 쉽기만 할까
-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 나답게 살면 그만이지
지금의 이야기로부터 책은 시작된다. ‘나이를 먹은’ 지금의 그녀는 나이 먹은 대로의 지금이 참 좋단다.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고, 아등바등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생겨서 좋다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타인들의 장례식을 지켜보면 자신의 마지막을 어떤 모습으로 남길지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젊은 나와 내 친구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글들이 빼곡하다.
살면서 겪었던 큰 아픔들을 글로 옮겼고,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잘 살아내고 있음 역시 글로 옮겨 두었다. 잘 살아냄이 돈 많이 벌어 떵떵 거리며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 앞가림하기에도 벅찬 어둠의 때를 잘 이겨내고 이제는 남들도 돌아보며 살 수 있는 양희은 이모의 모습을 비추며 “내가 해냈는데, 당신도 할 수 있죠.”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참 건강한 책이다.
책의 전반에서 양희은 이모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라는 것, 그리고 나답게 살라는 것’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라 그래’ 하며 자신의 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양희은 이모 덕분에 내 삶의 지혜도 한층 더 도톰히 채워진다.
내가 가장 불행하고 힘겹게 살아간다고 느껴질 때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엄마 밥 한 그릇이 그리운 자취생에게도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조금 더 지혜롭고 따뜻하게 사는 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당신에게도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은 구절들.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라 그래 p.42
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러라 그래 p.117
아버지의 빈자리를 더는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 몸의 반은 아버지가 주셨으니까. 사는 동안 늘 함께 사는 거라고, 나름대로 화해를 했고 원망과 미움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린 날 쏟아주신 사랑과 관심이 고맙기만 하다. 맏딸인 나를 보는 각별한 눈빛 덕분에 숱한 주눅과 후들거림을 뚫고 당당하게 세상을 대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러라 그래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