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백화점과 영화관과 영플라자,
그리고 호텔까지 아우르는
커다랗고 복잡한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눈썹 문신 리터치를 받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치워놓고
나설 채비를 했다.
얼마 전 구매한 카멜 컬러의
구수하게 생긴
‘빌리(Billy)’경량 로퍼를 신고
좋아하는 카키색 팬츠와
남방 위에 니트까지 겹쳐 입고
단정하게 집을 나섰다.
멋을 좀 부리기는 했지만
과하지 않으면서 단정한 내 모습이 좋아서
반짝이는 벽면만 보이면
자꾸만 나의 모습을,
나의 발걸음을 힐끔거렸다.
눈썹 볼일을 다 보고 난 뒤에는
백화점에 잠시 들를 일이 있었다.
내의를 사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히트텍 판매 상점이
하필 백화점 입점 매장이다.
자주 가지 않는 백화점이지만
볼일이 있으면 가야지 싶어 재빨리 볼일을 보고,
백화점 지하 식당가로 향했다.
오늘은 댄디하게 멋을 냈으니까
백화점에서 점심도 해결하고 가자.
한번 맛보고
몇 개월 동안 그 맛을 잊지 못했던
수제버거집을 찾았다.
여전했다.
오리지널 싱글 버거는
오늘도 혀끝에 새로운 잔상을 남겼다.
책을 읽으며 버거를 베어 무는데
버거만큼이나 맛있는 책이다.
버거를 해치운 쟁반을 펼쳐놓고
한참을 앉아 책을 읽었다.
카페처럼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이었다.
웅성거리는 소음과
작은 테이블을 하나 두고 건너에 앉은
어린 유부녀들의 수다를 브금(BGM) 삼아
독서를 했다.
아이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백화점에서 곧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주차 정산을 하고 차를 찾아
백화점을 빠져나가는 순서대로만 하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주차장 쪽으로 나서는데
차를 주차한 곳이
지하 1층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곳으로 향하려면 MVG주차장을 지나쳐야 했다.
천천히 걷는데
나와 똑같은 속도로
다섯 발자국쯤 앞서가는 여성분이 보였다.
지하 식품관에서 장을 보시고
옷도 한벌 사셨나 보다.
왼쪽 손에 들린 장바구니가 꽤 무거워 보였다.
가끔 내가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올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MVG주차장을 관리하는 직원이
그녀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건너왔다.
“고객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황송해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무거운 짐은 사내의 두 팔로 옮겨갔다.
주차장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녀의
메르세데스 차량이 있는 곳까지
사내는 맨손체조 선수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짐을 옮겨다 주었다.
그녀와 사내가 눈치채지 않을 정도로만 힐끗거리며
그들을 ‘구경’ 했다.
서비스가 흘러가는 정방향에 대해 생각하며…
그러다 보니 엉뚱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여전히 지하 2층이었고,
내 차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을 한참이나 더 살펴야 했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다행이다 길만 잃어서.
MVG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그리고 백화점에서 무의식 중에 스친
멋지게 차려입고 나온 타인들의 모습을 보며
불필요한 작아짐을 느끼며
마음까지 잃을 뻔했다.
길을 잃은 덕분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길을 잃어서 다행이다 정말.
*MVG(Most Valuable Guest) : 초우량 고객을 뜻하는 말로, 매출을 많이 올려주는 고객을 가리킨다. MVG는 VIP의 다른 말로 백화점이나 수입차 판매점 등 유통업계에서 많이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