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두 어린이와 함께 할 때면 가장 넘치는 것은 사랑이고, 그다음으로 넘치는 것은 대화다.
한 명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머지 한 명도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앞뒤 따지지 않고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관심을 끄는데 실패하면 어김없이 시무룩한 표정을 앞세운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을 만들어 "왜 제 이야기는 안 들어요? 네?" 하며 항의를 한다.
결국, 발언권을 순서대로 나란히 거머쥐게 하는 수밖에.
그렇게 얻어낸 발언권으로 귀여운 말들을 쏟아내는 작은 두 입술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 '난 정말로 최고로 부자야 마음이 부자야!' 하는 생각이 온 마음을 가득가득 채운다.
아, 물론 가끔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만.
자, 그럼 어째 두 달을 못 기다리고 11월 아이말 정산을 벌써 하게 되었는지 한번 봅시다.
아이들이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할 때면 바로바로 메모를 해 두는 편인데, 가끔은 그 감성이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가져다 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이번 달은 서둘러 지난달 정산을 미리 해버리기로 한다.
[11월 아이말 정산]
출연 9세, 5세 어린이
1) 어느 날 교회 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 모임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레고놀이, 경찰 놀이, 메카드 놀이 등 온갖 놀이를 다 하고 결국에는 영상 시청시간을 얼마간 가졌다. 영상 시청 후의 여운이 있는지 아이들은 그날 시청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형이 동생을 붙잡고 다짜고짜 조언 모드로 돌입한다.
"요한아 어린이 꺼라도 오징어 게임은 보지 마. 그런 거는 형아한테 다 물어보고 봐야 돼. 알겠지?"
그러자 동생,
“아니 나는 그거 안무서운 건 줄 알고 봤어.”
그러자 형아.
“오징어 게임은 다 무서운 거야. 그러니까 보면 안 돼 알았지?”
오래간만에 훈훈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들었다. 이런 격조 있는 대화 앞에서는 엄마는 일부러 못 들은 척을 해줘야 한다. 형님의 권위가 하늘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순간이다. 예쁘고 따스한 권위.
2) 하교 후 첫째 어린이가 집으로 오면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먹은 후에는 그날의 숙제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한 뒤 저녁 시간을 보낸다. 숙제는 주로 어렵게 집중을 해서 질질 끌며 하는 날이 대부분이고, 반짝 집중을 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날도 형은 힘겹게 집중을 해서 숙제를 시작했다. 그런데 동생이 자꾸만 형아 방으로 들어와서 피겨로 역할극을 한다. 엄마의 지적을 받고 슬그머니 물러난 동생은 금방 다시 형아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진심을 다해 역할극을 한다. 숙제하는 형에겐 큰 걸림돌이다.
참고 또 참던 형이 결국 한마디 한다. 그것도 아주 무섭고 단호한 표정으로.
"조요한! 너~ 순수히 말할 때 조용히 해라."
ㅎㅎㅎ
아마도 형은, '내가 좋게 말할 때 순순히 조용히 하시지~' 정도의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우 진지했는데, 형아는 자꾸만 말이 헛나온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는지 모른다는 게 이 대화의 관전 포인트다. ㅎㅎ 정말 어린이 말대로 순수하다 순수해.
3) 요즘 우리 어린이들의 애창곡은 이무진의 '신호등', 그리고 '개똥벌레'이다. 신호등은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고 하니 이해가 되는데 개똥벌레는 도무지 어디서 온 건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래를 들을 기회를 얻으면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엄마가 주방에서 일을 할 때 등) 어김없이 신호등과 개똥벌레를 틀어달라고 한다. 최근에 할머니 댁을 다녀오며 아이들과 개똥벌레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것도 옛날 버전으로.
개똥벌레 노래가 끝나고 나니 다섯 살 어린이가 말한다.
"엄마 이거 조금 슬픈 노래야."
"개똥벌레가? 왜?"
"'나는 개똥벌레 ~ 친구가 없어~'
이렇게 친구가 없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좀 슬픈 노래야. 개똥벌레는."
"아, 진짜 그러네."
입만 뻥긋거리며 따라 부르는 줄 알았더니 아이는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가며 듣고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맞다 맞다'하며 동의를 해 주고 나서는 개똥벌레 편을 조금 들어준다.
"그래도 괜찮아. 친구가 없다고 항상 슬픈 건 아니야. 친구가 없을 때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슬프게만 생각하지 마, 요한아."
그렇게 개똥벌레의 대화도 막을 내렸다.
보석 같은 아이들의 신비한 말들을 들으며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어린이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을 따스히 채우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은 좀 더 부드러운 엄마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