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되는 날이 있다.
머리를 또로록 또로록 굴려보아도
사진첩을 뒤적뒤적 뒤져보아도
글감이 떠오르질 않는다.
글감을 찾아 나서서
삶의 흔적들과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보지만
애를 쓸수록
글감이 아닌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을 괴롭힌다.
어제 분명 글감을 낚았는데
메모해두지 않아
글감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버렸다.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였는지
티끌만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놓쳤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하는 일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
글감이 떠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글이 써지지 않음을 인정하는 글을 쓰는 일.
이것이 또 하나의 글감이 되어줄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오늘도
‘안 써진다’는 글감으로 백지를 채워본다.
분주할 때면 종종 생기는 일이다.
글감을 놓치고,
멍 때릴 시간을 놓치고,
책 읽을 시간을 무한정 놓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감성의 계곡도
글감의 텃밭도 서서히 메말라 간다.
그렇게 써지지 않는 날이 다가오고야 만다.
오늘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괜찮다.
매일 마음을 담아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종종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할 일은 내일의 글감을 위해 움직이는 일이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정제된 인쇄물 속의 작가들의 활자를 훑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빨리빨리, 그다음 그다음 하며
숨 마저 참아 쉬어가며 바쁘게 살아가다가는
매일 글감 타령만 할 것이 뻔하다.
오늘은 어려웠다.
글감을 기억해내지도
번듯한 글을 엮어내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내일의 글터가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삶을 진심으로 살아내고,
책을 읽어내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채우고 나면
분명 내일의 글감이 나를 향해 다가올 것을 믿는다.
아쉽지만-
오늘 글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