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남편과 함께
먼저 잠든 두 꼬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문틈으로 살짝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김없이 감격한다.
‘우리에게 이런 멋진 꼬마가 둘이나 있다니!’
‘이렇게 예쁘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꼬마들이 있다니!’
그리고 감격의 끝자락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애들은 잘 때가 제맛이에요 여보!”
역시 내 품 안의 자식들은 잘 때가 가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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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앵두의 붉은빛을 띠는 엑셀 자동차.
나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첫 차였다.
빨간색이라 하기엔 좀 칙칙했고,
반짝이는 펄이 느껴지는 빛깔이라
붉은색이라고 딱 세 글자를 집어넣기도 거시기한
그저 붉은 빛깔의 자동차였다.
작지만 튼튼했던 엑셀을 타고
우리 가족은 전국 팔도를 여행했다.
물론 평소에도 요긴하게 타고 다녔다.
엑셀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가족이 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올 때가 많았다.
때론 밤이 깊었고,
때론 이제 막 해가 떨어지고 있을 때도 있었다.
운행 시간에 관계없이
일단 주변만 어둑어둑해졌다 싶으면
난 엑셀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잠을 청했다.
이미 커버린 때였고,
“그 시절엔 그런 거 없었어.”
하던 시대라 카시트 같은 건 올라타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뒷좌석에서 문에 머리를 처박고 곯아떨어지거나
언니 무릎을 베고 자거나,
상모를 휘휘 돌리며 잠을 자곤 했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해서는
늘 엄마나 아빠의 등에 업힌 채 집으로 들어갔다.
때론 살짝 잠이 깨기도 했지만
깊이깊이 잠든 척을 했고,
때론 너무 깊이 잠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한참이나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나를 억지로 깨운 적이 없었다.
잠들어 있는 나를 조심스레 어부바해서
침대까지 무사히 옮겨 주시곤 했다.
차에 올라타면 나는 어김없이 잠이 들었고,
그런 나를 당연한 듯 집으로 옮겨오는 부모님도
그 일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즐기셨을지도 모른다.
“애들은 잘 때가 제맛이에요!” 하시면서…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알아서 척척 양치질을 했을 것이고,
알아서 척척 잠이 들었을 테니
손이 많이 가는 내가 귀갓길에 먼저 잠드는 일은
충분히 부모님을 기쁘게 했을 것이다.
‘오늘 밤은 좀 쉽겠어…’ 하면서. ㅎㅎ
그때는 차에 올라타면 잠드는 일이 당연했고,
그렇게 잠들어서 집까지 옮겨지는 것도 참 좋았다.
그런데 부모님도 그 상황을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궁금한 적도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 까지는…
이제는 잘 안다.
그때의 엄마도 잠든 나를 보며
'앗싸 가오리!'를 외쳤을 거라는 것을.
우리들을 재워 놓고 두 분이 마주 앉아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셨겠지.
식탁에서 따뜻한 차를 나누셨겠지.
그리고 이런저런 삶의 고단함을 나누곤 하셨겠지.
30여 년 전의 우리 부모님이 느끼셨던 감정을
지금의 내가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음이 축복이다.
나의 부모와 비슷한 길을 걸으며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새로운 부모로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커다란 유산이자 사랑이다.
오늘은 퇴근길에도 엄마에게 다이얼을 돌려봐야지.
"엄마도 그때 그랬었어요?" 하면서
지금의 내 이야기를 들려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