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테이블의 소개팅남을 떠올리며

by 다니엘라

“저는 명절에도 근무 스케줄 때문에 집에 못 갈 때가 종종 있어요. 이제는 어른들도 그러려니 하시더라고요.”


“아, 정말요?”


“네, 그냥 명절 지나고 여유롭게 다녀와요. 그리고 큰댁에 가면 사촌 형들도 다들 없으니까 금방 내려와요.”


“아. 그렇군요. 쉬는 날은 주로 뭘 하세요?”


“게임도 하고, 쉬고 그래요.”’


“무슨 게임이요?”


“아, 옛날 건데… 스타 해요.”


“아! 저도 스타 하는데. 저도 가끔 하는데 재밌어요.”


……



어느 주말,

남편과 아이들을 영화관에 보내고

나 홀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을 읽으려고 앉았다가

옆 테이블에서 새어 나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버렸다.



의도적으로 엿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던 터라

오로지 책 읽기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옆 테이블의 남자는 필요 이상의 하이톤으로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작은 테이블 건너에 앉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소개팅에 심취한 그의 이야기를

내 귓가에서 떼어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

다행히 손에 쥔 책에 집중하는 것으로

그들의 대화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그날로부터 며칠이나 지난 오늘 즈음에

내 지난날의 소개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소개팅 이야기를 듣는 일은

누구나 즐거울 테니까.

(아입니까?ㅎㅎ)



20대의 후반부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던 때였다.

내 20대의 말미를

화려하게 장식해 주고 싶었던 지인들은

너도나도 소개팅을 주선하겠다며 나섰다.



소개팅을 나가는 날이면

내쪽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상대측의 남자분들은 열과 성을 다해

자기 자신을 홍보했다.



그해 여름,

그날은 가장 친한 친구가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준다며 나선 날이었다.

친구는 그때 신혼이었고,

같은 교회 소모임의 ‘교회 오빠’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아홉 살이나 많은 남자분이지만,

친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소개팅을 적극 추진했다.



새로운 사람과 얼굴을 트며

파스타를 한 접시씩 먹을 수 있는

소개팅이 싫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최소 두 시간 이상

탐구할 수 있었고,

물개 박수를 치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들도 즐거웠다.

그럼에도 아홉 살이나 많은 ‘남자분’과의 만남은

‘부담’이라는 감정을 떼어놓기가 어려웠다.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종로의 동아일보사 앞에서

소개팅남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게 싫어

한 시간쯤 전에 광화문 역에 도착했고

근처 교보문고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에 한창 관심이 많았던

일본 여행 관련 책자들을 뒤적이다 보니

금방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소개팅 때는 5-10분쯤 늦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정시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얀색 바탕에 하늘색 계통의 체크가 들어간

빈폴 남방을 입은 남자분이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정 자세로 서 있었다.

아홉 살이나 많다고 했는데,

교회에서 자주 보던 두세 살쯤 많아 보이는

착한 오빠 같았다.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근처 파리 크라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때가 가까웠던 때라 파스타 메뉴를 주문했다.

나는 봉골레를,

그는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무려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해주었다.

숱한 소개팅과 데이트를 해보았지만,

샐러드를 시켜주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아- 역시 서울 남자는 다른 건가.’

작은 테이블에 차려진 화려한 이탈리안 푸드들이

소개팅의 격을 한층 높여주는 것만 같았다.



포크에 돌돌 말린 봉골레 파스타는

목구멍 넘김도 부드럽고 좋았다.

거기에 아삭 거리는 샐러드까지 함께하니

입속에서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우리의 주된 대화 주제는 남미의 콜롬비아였다.

뒤이어 각자의 직장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콜롬비아에서 취업을 하여 1년 간 현지에 살았던 나와

얼마 전 콜롬비아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콜롬비아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새울 기세로

화창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대화 소재도 기가 막혔고,

각자가 마이크를 잡는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대화가 술술 통한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며 소개팅의 시간을 쭈욱쭉 늘려갔다.



식사를 마치고 배도 불렀지만,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후식의 감성이 남아 있었던 건지

우린 길 건너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팥빙수를 먹겠다고 했다.

나도 마침 느끼함을 씻어낼 만한

시원한 무언가가 그리웠다.

“그래요. 그럼 팥빙수 드시죠!”



팥빙수를 조금 큰 사이즈로 하나 주문했다.

팥빙수는 혼자서 시켜 먹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한 그릇에 숟가락 두 개를 찔러 넣어

먹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아홉 살 많은 남자와

같은 그릇에 숟가락을 담그고 말았다.



그 후로도 그는 사이드 메뉴를 추가해주며,

차에 올라탈 땐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며,

그리고 가끔은 꽃다발과 편지를 안겨주며,

8개월 간 매일같이 퇴근길에 집에 태워다 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우린, 만난 지 8개월 만에

순백의 결혼식장에서 양손을 마주 잡게 되었다.





글을 맺으며 -

지난 주말 옆 테이블에 앉아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홍보하던 소개팅 남에게도

사랑을 쟁취해내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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