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믿음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by 다니엘라


봄이 왔음을 알리는 벚꽃과 함께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겨우내 웅크리고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했던 아이들은

아파트 광장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찌그러진 공 하나와 탱탱한 공 하나로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피구 놀이를 한다.

광장에 모이는 아이들은 늘 비슷한 멤버.



아이들의 놀이를 한참 지켜보다

작은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간다.

작은 아이는 멀리서부터 형을 발견하고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형을 향해 뛴다.

느지막이 동생을 발견한 형은 손을 흔들어 보인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동생은 형의 놀이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광장을 누비는 형과 달리

동생은 형 주변을 맴돌며 돌멩이와 흙을 모아다가

나름의 놀이를 만들어서 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엄마 맛있는 거 먹을래요.”

하며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올해, 작은 아이의 여섯 살 봄이 되며

아이는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형의 피구 놀이장에 자연스레 끼어 들어가 있었다.

형도 지난 가을과는 달랐다.

“요한아 위험해. 저리 가!”

하는 대신

“요한이도 같이 할래?

얘들아 내 동생도 같이 한대, 끼워주자.”

하며 깍두기 멤버 비슷한 대우를 하며

동생을 놀이에 넣어준다.

같은 또래의 아이 친구들도

작은 꼬마가 공놀이에 끼어들면

아무래도 귀찮아질 텐데 불평 없이

오케이를 외친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또 한참을 지켜본다.

간이 조막만 한 엄마는

내 아이가

머리통에 공을 맞고

엉덩방아를 찧어도

못 본 척

놀라지 않은 척

태연하게 잘 버티고 바라봐야 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지루해지면 책을 펼친다.

알아서 잘 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쨍한 햇살을 받으며 내 할 일을 한다.



그날은 오후 네시에

인터넷 기사님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30분밖에 놀지 못한 아이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첫째 아이는 혼자 놀다가도

엄마와 약속한 시간이 되면

정확히 시간에 맞춰 귀가를 한다.

찻길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혼자 있을 때 더욱 침착한 아이다.

겁이 많고 약간은 소심한 성품이

오히려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낸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8-9년쯤 채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둘이서 재미있게 놀다가 네시 반까지 돌아올 것인지

동생만 엄마랑 먼저 집에 갈 것인지...

두 아이 모두 고민도 없이

같이 놀다 가겠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 아이는 기어이 꼬셔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겠지만

며칠간 함께 노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다.

온전치 않더라도 일단 믿고 맡기기로 한다.

둘이서 손 꼭 잡고 집으로 오겠다고 하니

그렇게 믿고 먼저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네시 반에 딱 맞춰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섰다.

전장에 나갔다 들어온 군사들처럼

대견하고 소중하며 고마웠다.

땀에 젖은 두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특히 첫째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괜히 통통한 볼을 한번 더 쓸어내려준다.



혹여나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건너다 다치지는 않을지

동생이 손을 놓쳐 길을 잃을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던 엄마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이들을 믿는 마음을 키우고

걱정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 두었다.

믿었더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는 만큼

엄마의 믿음도 자라 감이 느껴진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그 말이

실전에 적용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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