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눈물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너무너무 좋은 일이 있어서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주책맞은 눈물이 쑥스럽다.
속상한 일이 생겨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누구나 흘리는 눈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감추고 싶은 눈물이다.
이별 앞에서 주체할 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분명 그렇게 슬픈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내 눈에서 쏟아진 눈물 때문에 주변까지 촉촉이 적신다. 이렇게 주도할 필요까진 없는데, 눈물이라는 게 자꾸 이런다.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때가 가장 울고 싶지 않을 때지만, 이때가 가장 눈물을 막아내기도 어려운 때다.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쑥스러움을 여러 번 경험하게 만든 일인데, 남의 눈물을 보고 따라 흘리는 눈물이다. 분위기가 약간만 조성되고 타인이 울기 시작하면 공감 때문인지 측은한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럴 때 보면 눈물에도 전염성이 있는 게 확실하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예고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조절을 하며 좀 더 이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때가 많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눈물이 나쁜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거니와, 눈물이 많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없지만 눈물에 대해서 스스로 뜨악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아마도 어느 때부턴가 읽어오던 책에서 ‘흐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라던가 ‘눈물을 꾹 삼키고’또는 ‘솟구치는 눈물을 막아내기 위해 그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와 같은 눈물 도피성 표현들을 마주하며 눈물이란 참고 견디며 피하는 것이 뭔가 더 고차원적인 사람의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동경에 가까운 눈빛으로까지 바라보며 따라 하려 애썼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과 나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눈물을 순식간에 닦아 내는 기술은 점차 업그레이드되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아낼 재간은 없었다.
결국 눈물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울보 왕눈이’ 별명을 받아들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겪은 후로는 더 이상 눈물은 나에게 주도권이 있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고 흐르면 흐르는 대로 쏟아지면 쏟아지는 대로 눈물의 자율성을 허락했다. 상황이 곤란할 땐 자리를 피하기도 했지만 눈물을 일부러 막으려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예쁘고 청순했던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반 대표로 몇몇의 친구들과 축가를 준비했다. 겉멋이 잔뜩 들어있던 그 시절의 우리는 어려운 듀엣곡을 준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지만 애초에 고음불가였던 우리가 가 닿지 못할 수준의 곡이었다. 그럼에도 곡이 바뀔 일은 없을 거라며 마지막까지 연습의 끈을 놓지 못하고 부르고 또 부르며 결혼식이 열리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서며 성당 특유의 향과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성당의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무향과 촛불에서 나오는 초가 타들어가는 냄새 같은 것들이 낯선 풍경과 어우러지며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축가를 부르기도 전에 긴긴 혼인 미사 강론이 이어졌고 중저음으로 부르는 성당식 찬양은 너무나 낯설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한참을 기다려 축가를 불렀다. 반주자가 따로 없어 준비해 간 시디를 재생했고 시디에서 흘러나오는 가수의 목소리에 우리의 목소리를 파묻으며 축가를 불렀다. 가사 실수가 나오고 개미 목소리 구간이 이어졌으며 축가를 부르는 내내 표정 관리가 힘들 정도로 단체로 축가를 망쳐버렸다. 아쉬움과 속상함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축가 후에 이어지는 순서로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 타이밍에는 결국 신부와 함께 내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치 내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는 부모처럼 눈물을 콸콸 쏟아냈다. 축가를 망친 일이 속상해서였는지, 아니면 신부의 마음이 되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양가 부모님의 마음이 되었는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모인 하객들이 훔친 짤막한 눈물 조각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예식이 끝난 후 국수를 먹을 때가 되어서야 눈물은 멈췄고, 씩씩한 여고생이었던 나는 그날 눈물 앞에 완전한 패배를 선언했다.
눈물은 이성의 어떤 끈으로 당긴다고 조절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사건이었다. 눈물을 펑펑 쏟던 그 순간은 쥐구멍이 아니면 바퀴벌레 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지만, 그 눈물이 무조건 나쁜 것만큼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눈물을 잔뜩 흘리고 난 그 오후는 비가 갠 하늘처럼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눈물의 시작점이 어떠했든 간에 쏟아내고 난 뒤의 개운함은 또 새로운 것이었다.
막을 수 없는 눈물이라면 흐를 때 흐르도록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흐르는 땀을 막을 수 없듯이 흐르는 눈물을 일부러 막아내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흐르면 닦아내고, 쏟아지면 씻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주책맞게만 느껴지던 눈물과 손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이후 지금도 여전히 헤픈 눈물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눈물이 감추고만 싶은 것은 아니다. 웃고 떠드는 것과 같이, 먹은 대로 대소변을 배출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남들보다 좀 더 흘린다고 부끄럽지도 않고 덜 흘린다고 문제 될 것도 없다.
물론 늘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눈물 앞에서는 그럭저럭 스스로를 이해하며 살아간다.
눈물이 많다는 건 그만큼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만큼 감정 표출에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울보들이여 가슴을 쫙 펴라. 그리고 마음껏 울고 마음껏 닦아내라. 우리의 눈물 덕에 지구촌의 삶이 조금 더 따뜻하고 포근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