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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것

by 다니엘라


우리가 만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였던가, 남편은 나의 굿보이 콤플렉스를 지적했다. 아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는 정확한 나의 약점을 들여다보았고 그렇게 애쓰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로 그날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내면의 다락방을 된통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그 마음을.



오랫동안 착한 이미지를 고수해 왔다.

이왕 사는 인생 적을 만들지 말고 적이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관계를 엮어나갔다. 체인에 기름칠을 단단히 해 부드럽게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처럼 내 곁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마음을 쏟았다.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를 썼고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 따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현실은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다는 듯 흘러갔다.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했고,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미움을 사는 상황도 생겨났다.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미움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나의 노력이 상황을 조절할 수 있으며 갈등 또한 막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오래도록 저버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아빠가 직장에서 전근을 하게 되시면서 온 식구가 이사를 해야 했다. 인생 첫 전학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전학 간 학교에서도 금방 친한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해에 반장까지 했으니 적응까지는 분명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다른 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등교를 했는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자꾸만 내 눈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고 말 한마디 붙일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교 후에 놀이터를 함께 장악했고, 팔짱에 팔짱을 엮어 우르르 몰려다니던 내 친구들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친구들은 낯선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만 봤던 이지매, 왕따가 시작되었다.

말도 붙일 수 없는 그녀들에게 왜 그러느냐고,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들이 주는 대로 받고만 있어야 했다. 태어난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맞닥뜨린 커다란 갈등이었고, 미움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미움을 받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이럴 때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은 그저 나를 무시했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괴롭히거나 놀리거나 골탕 먹이는 행동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 역시 살 길을 찾아야 했고, 평소에 눈웃음만 주고받던 친구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교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녀들과는 가까이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새로운 관계들을 꾸려 나갔다.

왕따는 사나흘 정도 지속되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나를 주도해서 따돌렸던 친구가 친근하게 다시금 다가왔다. ‘이게 무슨 코딱지 같은 상황이야?’ 생각할 틈도 없이 나 역시 다시 그녀들 곁으로 돌아갔다. 관계는 일방적이었지만 결국은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왜 왕따를 당했는지, 왜 나를 그렇게도 미워했었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그때 왕따를 당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인생은 원래 모르는 것 투성이 아닌가. 모르는 대로 사는 게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페이스북이며 인스타그램으로 그녀를 찾아 나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무리는 새로운 타깃을 찾아 무리의 우두머리가 이끄는 대로 종종거리며 따라다니기 바빴다. 서로가 서로를 돌아가며 따돌리는 고약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예닐곱 명의 무리가 두어 달을 따돌림 돌림병이 도는 교실로 만들어 버렸다. 두어 달 동안이나 교실이 그 지경이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관심조차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 석자도 잊히지 않는, 열두 살의 내가 느끼기에도 비겁해 보였던 선생님은 학교를 제집 드나들듯이 들락거렸던 우리 반 부잣집 딸의 엄마와 연락하고 지내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빠 보이셨다. 덕분에 따돌림 릴레이는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고 내가 당했던 것처럼 다른 친구가 어떤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지 정확히 파악도 못한 채 그 친구와 말을 섞을 수 없었다. 때론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와 몰래 말을 걸고 쪽지를 보냈다가 다시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던 때였다. 다행히 따돌림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은 것이어서 우리들 무리는 큰 상처 없이 5학년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6학년이 되면서 키가 남들보다 머리통이 하나쯤 더 컸던 날카로운 눈빛의 리더 *영이가 전학을 가면서 교실에서도 학교에서도 더 이상의 왕따는 경험해 보지 않게 되었다.


사랑받고 싶다고 해서, 인정받고 싶다고 해서 쉽게 받아지는 것이 결코 인생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삶은 그렇고 그런 것임을 호되게 깨닫고 나서도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수많은 세월 동안 기대하고 믿고 사랑해 오면서도 밀려나고 미움받고 숱한 면박을 받아온 것이다. 그렇게 마주했던 인생이 조금 더 진짜에 가까웠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미움받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미움받는다 하더라도 인생이 두쪽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 삶을 점점 더 야무지게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인생은 '행복을 찾아서'가 아닌 이틀에 한번 꼴로 겪는 거칠고 쓰라린 경험 속에서 보석 같은 행복을 잠깐씩 맛보며 살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실눈을 뜨고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이를 바라본다. 열정적인 사랑도 경험해 보고 자녀들의 귀여움도 독차지해봐서 그런가 이제는 조금씩 사랑받고자,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인생을 점차 호되게 경험해 보면서 좀 더 단단해진 덕분이기도 하겠다.

이젠 굿보이 콤플렉스도 굿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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