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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취향

by 다니엘라

얼마 전 남편에게 선물 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라 집어 들면 금방 읽어낼 줄 알았고, 읽고 나면 글로 뽑아낼 것도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시인이 쓴 에세이였다.

엮인 책에는 온통 예쁘고 고운 말이 가득했다.

일부 글들은 예쁘고 고운 데다가 무릎을 탁 칠만큼 공감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였다.



예쁘고 고운 말, 그리고 기발한 표현들이 쓰인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 한 권 전체가 그러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꽃 한 송이 또는 꽃 한 다발 까지는 감동이 되고 좋아하지만, 드넓은 꽃밭은 오히려 감격스럽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 꽃 한 송이, 꽃 한 다발은 주변의 덜 반짝이는 것들과 대비되어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반면 꽃밭은 온통 꽃 천지다. 한마디로 꽃밭에서의 꽃은 흔해빠진 것이라는 점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예쁘게 쓰인 글들은 쉽게 마음을 주기가 어렵다. 반대로 보통의 언어를 쓰는 에세이에 가끔씩 툭 튀어나오는 예쁘거나 기발한 표현을 발견하면 마음을 쏙 빼앗겨 버린다.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해낸 것처럼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맘에 드는 구절을 따로 메모하기도 하고, 내 글을 지을 때 비슷하게 흉내 내 보기도 한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을 수 있겠다. 에세이 속 함축된 표현을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었겠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예쁜 글들을 모조리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었겠지.



시와 에세이의 중간쯤 되는 글 모음집을 어떤 기분으로 읽어야 할지 몰라, 들었다 놓았다를 여러 번 반복한다.

모든 책을 반드시 완독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읽지 않아 귀한 글 한쪽을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친다. 책장을 펼치고 몇 페이지를 더 읽어 나간다.



2-3년 전쯤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수개월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유명한 책이었다. 타이틀도 완벽에 가까웠고,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작가의 책이었다. 당연히 기대했고 손에 들어오는 즉시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결국 완독 하지 못했다. 너무 예쁘고 기발한 글들이 많았던 게 문제였다. 내가 가진 언어와 내가 가진 감성으로는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분량의 탁월한 글들의 모음집이었다.

그 당시 완독의 실패와 최근 완독의 실패는 동일한 메시지를 건넨다.

글은 지나치게 예뻤고,

나의 읽기 취향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작품이었다고.



읽기의 취향을 알고 지내는 것은 즐거운 읽기 생활에 반드시 한몫을 한다.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즐겁게 읽는다는 개념에서는 자신의 읽기 취향을 잘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글 많은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들만 읽어내기도 숨 가쁜 날들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책장에 꽂혀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고민 없이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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