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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by 다니엘라



2주간의 봉사활동을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어제는 귀국을 위한 쇼핑도 하고 이젠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십여 년 전에도 같은 봉사 프로그램으로 이곳 에콰도르를 찾았었지만 세월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오히려 놀라웠다. 깊은 산속에 숨겨진 마을이라 시간의 흐름이 더욱 느린 탓도 있겠지만 이 지역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원주민들이다 보니 기존의 삶의 방식에 변화를 끼얹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해외 인터넷 봉사단. 우리가 떠나온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타이틀이다.

세계 각국의 오지에 파견되어 2주-한 달간 컴퓨터 교육을 하고 한국의 문화도 소개하는 실용적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다. 10년 전에 함께 떠났던 멤버들이 유부녀 유부남이 되어 다시 뭉쳤다. 컴퓨터 기술 및 디자인 담당 2명, 통역 및 교육 1명, 문화 담당 1명으로 꾸며진 우리 팀은 10년 전이나 다를 바 없이 따끈따끈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이곳 에콰도르로 돌아왔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그때는 봉사활동 지원금에만 매달려 있던 가난한 대학, 대학원생들이었고 지금은 각자 주머니가 두둑한 어엿한 사회인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하루에 9불씩 내며 묵었던 숙소를 벗어나 하루 30불짜리 괜찮은 호텔에 묵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30불이면 이 지역에서는 제일가는 숙박 시설이었다. 1층에는 미국 아이스크림을 파는 냉장고가 딸린 매점 겸 식당도 딸려 있었으니 최소한 먹는 문제로 고생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10년 전에 묵은 호텔은 벼룩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매일 밤 잠을 이루어야 하는 곳이었기에 이번 숙소는 하얀색 침구가 딸려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호화로운 호텔로 인식이 되어버렸다.

2 주 간의 봉사활동은 더없이 순조로웠다. 사회 물을 먹은 멤버들은 교육자료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준비했고, 배우는 이들도 조금 더 성숙한 봉사자들의 등장에 긴장과 기대의 얼굴빛을 반반씩 비추며 수업에 참여했다. 컴퓨터 교육과 모바일 교육,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콰도르 문화의 날 행사까지 매끄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주민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귀국일 이틀 전,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Quito)로 돌아왔다.


귀국 전 마지막 과제는 신속항원 코로나 검사를 받는 일이었다.

검사를 받기 위한 대기줄만 어마어마했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검사 대기줄에서 코로나에 감염될 것만 같은 꽉 막힌 광경이었다. 우리 팀원 세 명의 검사가 끝나고 다음은 내 차례.

30분 후에 검사 결과지를 받으러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국 전 마지막 커피를 한잔씩 홀짝였다. 거친 원두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에콰도르 땅임을 다시 한번 알린다.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두 아이를 돌보고 남편과 아웅다웅하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2주간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다가 다시금 내 삶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남편의 배려 덕분에 잘 쉬었고, 노심초사하며 챙겨야 할 아이들을 2주간 잊은 채로 잘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이해해 주겠다는 기분 좋은 결심을 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팀원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렸고 신속항원 코로나 검사 결과지를 받으러 검사 본부 창구로 향했다.

PASS라는 파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용지들을 펄럭이며 걸어오는 팀원들을 가로질러 나의 몫을 챙기러 나섰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세뇨라 지’는 반대쪽 창구로 가서 용지를 받으란다.

그렇게 건네받은 용지에는 FAIL이라는 주홍빛의 문구가 찍혀 있었고, 그 길로 팀원들과 멀리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 ‘확진’이었다.


에콰도르 입국 일주일 전에 코로나 재확진을 받았다. 하룻저녁 열이 나길래 혹시나 해본 검사 키트에서 양성이 나오고 일주일간 스스로 격리하며 특별한 증상 없는 코로나 재감염 기간을 보냈다. 일주일 후 코로나 검사 없이 에콰도르로 무사히 출국을 했다.

재확진을 받고 깜깜이 환자로 지낸 것이 화근이었다.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고 하루를 더 기다려 공식 확진을 받는 일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코로나 증상이 따로 발현되지 않다 보니 보건소 확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마저 들어 자가 확진의 확인을 끝으로 스스로 조심하는 일에만 집중을 했다.

‘코로나 확진 후 45일간은 코로나 검사 시 양성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는 안내문을 아이가 다니는 학교 공지문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이제서야 기억이 난 것이다. 에콰도르 입국 시에는 코로나 검사를 따로 하지 않지만 한국 입국 시에는 출발 국가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깜깜이 재확진을 받았던 나는 무증상 확진자의 취급을 받으며 에콰도르 현지의 임시 격리소에 짐을 풀게 되었다.

귀찮음 때문에 처리하지 않은 묵은 일이 귀국길을 막아버렸다. 남들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확진 일주일 후 양성 반응이라는 결과가 나에게도 일어났다. 등록이 되지 않았던 환자였던 탓에 찍소리도 내지 못했고 출입국 보건 담당자들의 안내에 따랐다.


공항에 마련된 임시 격리소는 4인 1실의 작은 방이었다. 침대는 기역자로 단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생전 처음 만난 외국인들과 일주일 간 한 침대를 써야 한단다. 어지럼증이 찾아온다. 재확진을 받았던 그날의 두통이 다시 시작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대략 두 시간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어디에 맡겨야 하며, 곧 시작될 한국의 추석 연휴와 겹쳐 복잡해질 귀국길 항공권은 어떻게 변경을 해야 하며, 네 명의 옥색 빛깔 눈동자의 언니들과 좁은 방에서 일주일을 어떻게 버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간단했어야 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험난한 자갈밭길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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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자작 단편소설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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