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결혼기념일이 찬란하게 밝았다.
아니 벌써! 10주년 이라니….
10년 전 오늘 하얀 드레스와 까만 턱시도, 그리고 수국으로 장식된 웨딩카.
그날 아침에도 역시 내 볼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내가 정말로 결혼이라는 걸 하는 걸까? 이렇게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게 가능한 걸까? 꿈이야 생시야 하며 볼을 마구 꼬집어보고 싶었던 날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저녁 7시 30분, 남편에게 내 볼을 꼬집어 달라고 부탁했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 4개월 반이 지난 시점, 남편의 줄줄이 야근으로 나 역시 줄줄이 육아 야근을 이어왔다. 지난밤엔 심지어 새벽녘이 되어서야 퇴근을 한 남편….(믿기지 않습니다만, 우리 만남 이래로 야근 횟수의 최다점을 찍고 있습니다, 네네.) 잘 살아내기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루씩 꾸역꾸역 ‘살아냄’에 집중을 하며 지내왔기에 이번 결혼기념일엔 당일 축하 대신 주말 외식으로 미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녁 일곱 시 반쯤 되자 남편이 짜잔!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대도 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보내왔는데(그래서 실망도 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버텨왔는데!!) 남편의 뜻밖의 이른 퇴근에 마음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 꽃과 케이크까지 함께 하니, 뭐 내 마음은 이미 우주 정거장 도착.
저녁 식사를 앞두고 남편에게 진지하게 부탁했다.
“여보 내 볼 좀 꼬집어 주세요. 이 시간에 여보를 보게 되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결혼기념일 선물로 대면으로 볼을 한 번 꼬집히고
함께 살아감에, 함께 헤쳐 나감에,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주말엔 10주년 결혼기념일 부대 행사로 주말 외식이 예정되어 있다. 다섯 식구의 첫 외식이다.
철없던 꼬꼬마 시절 기대했던, 신혼 여행지인 시드니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10주년 결혼기념일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값진 다복한 가족이 완성된 오늘이 참 감사하다. 지금까지 온 10년 보다 더 오랫동안 마음껏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부부와 우리 가족이 되기를 소망하며 10주년 결혼기념일 기록을 마친다.
자, 이제 다시 볼을 꼬집어 볼까? (애들 다 재우고 글 쓸 수 있는 이 시간, 실화 맞습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