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읽고, 느끼고, 쓰는 것이 일상이었던 날들이 있었다.
너무 당연한 날들이었고, 쓰지 않는 날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습관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거짓말처럼 그 습관은 내 몸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
매일 글쓰기를 이어가던 날들은
새벽 기도회를 꾸역꾸역 챙겨 나가듯, 졸린 눈 비비며 매일 독서실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수험 공부를 하듯, 힘들지만 뿌듯한 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습관으로 만들어낸 매일 글쓰기가 이제는 녹이 슨 톱니바퀴처럼 쓸쓸하게 멈춰 있다.
도대체 왜?
셋째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이전에 상상해 오던 것만으로는 전혀 커버가 되지 않을 만큼의 바쁜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24시간 중 깨어있는 시간은 해야 할 일들로 하루를 꽉꽉 채워냈다.
첫돌 이전의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삶은 바쁘고 정신없기로는 다들 비슷하겠지만 두 명 이상 키워본 나만은 다를 줄 알았다. 새아기가 태어나도 늘 그래왔듯 스무드하게 일상을 버무려 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신생아 육아 앞에서는 경력직이라는 수식어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현생이 바쁘고 힘들어서’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곤 했다. 그리고 여유가 생겨도 글을 쓰기보다는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지나간 예능들을 훑으며 큰 의미 없는 웃음들을 공중에 붕붕 띄우곤 했다. 육아 집중 시기에 매일 글을 써 보았더니 주로 징징거리는 글을 쓰게 되거나 글도 물도 아닌 것을 대충 휘갈기는 게 전부여서,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매일 글쓰기를 잠시 미뤄두었다.
매일, 혹은 자주 쓰지 않으며 처음 든 마음은 불안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뭐라도 하거나 뭐라도 쓰거나 해야 하는데…. 누가 나 좀 붙잡아줘요! 하는 마음으로 오전 나절을 보냈다. 한참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지만, 마음만 불안할 뿐 딱히 글을 쓸 수도 없었기에 불안하기만 했던 그 마음은 똑딱 털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멍 때리는 시간이라도 줄여보자 싶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쓰지는 못하더라도 읽는 일에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때는 읽는 일마저도 집중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요즘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장을 뒤적이곤 한다.
지금은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꼭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쓰고, 그리고 너무너무 쓰고 싶어지는 날에도 쓰고, 또 즐거운 프로젝트를 틈날 때마다 준비 중이고,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 책을 읽거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아이들도 키우는 중이다.
이제는 매일 쓰지 못해도 괜찮다. 나 스스로에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도 돌고 도는데, 글쓰기 인생도 늘 상승 곡선만 탈 수는 없지 않은가.
돌고 도는 글쓰기 컨디션 그래프를 믿으며,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의 일상마저도 사랑하기로 한다.
잘 지내고,
글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