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송 기사님과 함께 우리 집 앞에 도착한 카니발을 만나던 날 인생에서 또 하나의 산맥을 넘은 듯한 뿌듯함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정말로 방방 뛰며 좋아했고, 남편과 나도 실제로 뛰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널뛰기가 시작되었다.
다섯 식구가 어색하게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드라이브를 했다. 계획에 없던 외식도 하게 되었는데, 아웃백으로 가자고 외치는 아이들을 힘겹게 진정시키고 맛있는 수제버거집으로 향해 자동차 구입을 축하했다.
자동차에 이름을 붙여주자고 가족 내에 공모를 했는데 아이들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아직은 무명으로 불리는 중이다.
첫째의 덩치는 날로 커지고 둘째도 부지런히 성장을 하는 데다가 셋째의 카시트까지 sm3의 뒷좌석에 싣고 보니, 뒷좌석에 앉은 우리 아이들이 조만간 납작한 오징어로 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종종 자리다툼을 했고 아이 둘과 나 사이에 앞자리 차지하기 눈치게임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밀리카 구입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2023년 구정 연휴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 식구가 sm3에 올라타 한 시간 반쯤 되는 거리의 친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첫째와 둘째의 자리다툼이 시작되었다. 연휴의 피곤함에 참을성 지수는 점점 떨어지고 결국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의 귀성길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조금 더 큰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의 마음속 패밀리카 1위는 카니발이었다. 2위는 혼다에서 나왔다는 시에나 하이브리드. 일단 외제차는 제외하기로 하고 카니발을 1. 새 차로 살 것인지 중고차로 살 것인지 2. 3,4 세대 중 어느 것으로 할 것인지 3. 언제 살 것인지를 고민으로 남기고 우리 부부는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고차 시세를 알아보는데 시세가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카니발은 중고차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는 차종 중 하나라고 하기에 비싼 값에 중고차를 살 바에야 새 차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큰 착각에 빠져 괜히 새 차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날 기아 자동차 전시장에 들어간 우리 가족은 덜컥 신차 계약을 했다.
그날은 모처럼 기분을 낸 날이었다.
계약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난 카니발 4세대의 차주가 된 것만 같았다. 차량을 인수받기 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거라는 대리점 직원의 말에 차량 할부금액, 할부 방법들은 조금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계약서를 쓴 지 2주쯤 지났을 때였을까? 기아 자동차 전시장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신차를 계약하신 다른 분이 취소를 했는데 우리가 그 차를 받을 생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락이 온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신차를 받고 싶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성한 상상의 나래만 펼쳤지 현실적인 생각은 접어둔 참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어버이날도 있고 어린이날도 있고 어머님 생신도 있고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지는 시즌이었기에 일단은 보류를 했다. 그리고 2주쯤 지난 어느 날 기아 영업 직원으로부터 또다시 차를 받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니 점점 현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좀 더 큰 차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꼭 새 차를 사야 하는 건 아니었다. 중고차 값이 비싸다고 해도 새 차의 가격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결국 두 번째 제안도 거절을 했다. 그리고 용기 낸 김에 계약 자체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어?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계약금 10만 원을 고스란히 돌려준단다. 신차 계약은 처음이라…. 원래 자동차는 계약을 철회하더라도 계약금을 돌려주는 거란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또 우리 둘만 몰랐다. 뭐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지.
이제는 다시 중고차를 알아볼 차례다. 신차의 옵션을 조금씩 공부해 놨던 터라 눈은 높을 대로 높아져 있었다. 그럼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남편과 나는 서로를 우리에게 맞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중고차 구매 기준을 정했다.
1. 주행거리는 5만 킬로미터 이하일 것.(되도록이면 3만 근처.)
2. 9인승 일 것
3. 반드시 비흡연 차량일 것
대충 이 정도의 기준을 세워 찾고 또 찾았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찾겠다 싶을 때쯤 마음에 드는 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금의 우리 차를 만났다. 남편의 자동차 실물 확인을 끝으로 진짜 계약서 작성을 완료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중고차 구입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새 차는 아니었지만 새 차 같은 중고차가 우리 곁으로 왔고, 꿈만 같았던 첫 만남 이후로 우리 가족은 편안함에 금방 적응을 했다.
처음엔 감히 내가 이 좋은 차를 운전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인간은 재빠른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집채만큼 큰 차를 끌고 이리저리 잘도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자리를 넘어왔느니 자리가 좁다느니 하는 영역 다툼은 없어졌다. 가끔 서로 막냇동생 옆에 앉겠다는 귀여운 다툼이 있긴 하지만 그런 다툼은 언제나 환영이기에 그저 본 듯 못 본 듯 반응을 최소화하며 즐긴다.
오랜 고민 끝에 얻어진 우리의 무명 카니발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귀하게 쓰임 받는 차가 되길 바라며 우리 가족의 우당탕탕 새 차 같은 중고차 구입기를 마친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