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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ul 13. 2023

출장길에서


인천공항 출국장.

여기서부터 25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 ‘원활’이라는 글자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출국하는 사람의 수가 연휴 때만큼은 아니라 출국 수속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덕에 25분이면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짧은 거린데 25분이나 걸린다고?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짧은 거리지만 소지하고 있던 짐과 물품들을 검사하고 여권에 도장까지 쿵쾅! 찍어주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줄을 따라 거북이걸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년만에 맡는 출국장 공기에 집중한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설렘 가득한 얼굴들, 설렘 덕에 피곤함을 잊은 너그러운 행동들 그간 잊고 지냈던 공항의 공기를 마주하고 있자니 출장에 대한 긴장이 묘하게 풀어진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설렘이  하니 들러붙는다. 분명 마음이 무거운 출장 길인데, 집에 두고  아내와 가족들에겐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떠나온 출장 길인데   뻔뻔함이 고개를 내밀며 어느새 긴장과 부담은 털어내고 설렘과 즐거움이 마음을 휘감는다. 역시 즐거운 마음은 적응할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아 간다.  



그러다 문득 집에 남겨진 아픈 막내딸과 고생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뜨끔한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메시지를 한통 띄워본다.

“여보가 고생이 너무 많아요.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메시지 창 옆의 숫자 1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장이 도착한다.

“저도 사랑하고 고마워요!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휴우 다행이다. 아내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게 틀림없다. 아이 셋과 아내를 떼어놓고 나 홀로 출국장이라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휘파람이 호롤롤로~ 새어 나온다. 그래도 아내에겐 들키지 말아야지.



오늘 새벽, 출장 갈 짐을 챙기고 있는데 아내가 눈을 절반쯤 감고 나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막내딸이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아이를 셋이나 맡기고 떠나는 해외 출장이 아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아프다니 곧바로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아내는 벌써 2주째 잠을 설치고 막내도 병원 약을 거의 3-4주째 먹고 있다. 분명 지난 금요일에 병원에서 아이가 거의 회복되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괘씸한 바이러스가 새롭게 우리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과 미안함을 주렁주렁 매달고 출장길에 오른 터였다. 광명역에 도착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꼬박꼬박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하는 내내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이는 여전히 열이 난다고 했지만 아내의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걱정은 잠시 잊고 안심해버린 모양이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섰다. 메뉴 구성이 화려하진 않아도 한 끼를 해결하기엔 충분했다. 내 돈 들여서 점심을 사 먹지 않고 들어오길 잘 했다. 접시를 가득 채우고 아이스커피까지 예쁘게 세팅을 해서 자리에 앉았다. 아내에게 인증샷을 보내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즐거운 마음 사이로 또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신혼여행을 나서며 아내를 처음으로 공항 라운지에 데려갔을 때 어린아이가 놀이동산에 처음 가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내를 기쁘게 해줄 수 있어서 행복했던 그때의 내 마음도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공항에서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화장품 필요한 것 사다 드릴까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답변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렇게라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보딩이 시작되었다.

하늘로 오르기 전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기 위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파트 광장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내는 아기와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 땅과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게 되는 것에 대한 설렘과 다시 돌아올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번 출장은 어쩐지 결과가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아내도 어쩐지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다.


———


오늘 남편이 출장을 떠났습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 앞에서 겪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남편의 입장에서, 저의 사심을 가득 담아 구성해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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