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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ul 18. 2023

내가 우리 남편을 애껴 주는 법


자아, 오늘은 내가 남편을 애껴주는 조금은 독특한 방법을 공개해 보겠다.

그건 바로 남편의 원초적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



투우우우우우우우우

흐우우 크릇


흐하하앗

큐휴

흐하하핫크륵

휴우


크흐어어어

응커



오늘도 한참을 듣다가 글로 옮겨본다.

남편의 코골이 소리다.

학창 시절 때부터 영어 듣기 평가는 늘 최상위로 평가받을 정도로 듣기 실력이 좋은 나다. 귀가 밝아 어떤 소리든 잘 분별해 내는데, 어라 - 이건 좀 어렵다.

남편의 코골이 소리는 아무래도 단순한 발성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소리다. 분명 한 사람의 코와 목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소리일 텐데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이중 삼중창이다. 게다가 발음도 혀가 내는 발음이 아니라 공중에 띄워지며 살짝 해체되는 공기의 떨림이다 보니 단번에 어떤 소리인지 분간해 내기가 어렵다.

오늘은 이 정도가 최선이다.

(오늘 남편의 코골송이 유독 길고 오묘한 걸 보니 많이 피곤한 하루였나 보다.)


나도 한참을 감상했고 게다가 옆에서 아기도 자고 있으니 이제 코골이 볼륨을 낮춰야겠다.

코골이를 멈추거나 볼륨을 낮추는 방법은?

남편 손을 꼬옥 잡거나 코나 얼굴을 만지면 된다.

오늘은 손등을 꾸욱 누른다.

엇? 안되네?

귀를 살짝 당겨보니… 성공이다!

오늘 듣기 평가는 이쯤에서 끝내고 우리 모두 평화롭게 잡시다. :)



귀한 집 자식인 남편을

웬수같다 미워하거나 일꾼 취급만 하지 말고,

가끔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도 집중해 보고,

방귀가 터지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코기울여 보도록 하자.


코 골아서 시끄럽다, 방귀 뀌어서 더럽다는 소릴 듣는 당신의 남편은 오늘 하루도 귀한 아내인 당신과 자녀들 생각만 하며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급하게 먹느라, 혹은 상사 앞에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체 식사를 해내느라 가스도 꽉꽉 찼을 테고, 듣기 싫은 소리도 씹어 삼키고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음으로 봉사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생존 현장에서 살아내느라 피곤함이 똘똘 뭉쳐 있을 것이다.

남편이 뀌는 방귀며, 뿜어내는 코골이 어느 하나도 가벼이 나오는 것이 없을 테니, 잔소리 대신 애정으로 대해주도록 하자. 매일은 어려울 테고, 가끔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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