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가 북적거리는 저녁이었다.
얼마 전 구내염으로 고생한 우리 막내에게서 균을 전달받고 감염된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아닌 내가 되었다. 이로써 막둥이를 제외한 네 사람 중 면역이 가장 약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증한 셈이다.
입술이 심하게 헐어서 입술 안쪽의 살갗이 제대로 무너져 내렸다. 통증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독하다. 지독히 아프지만 대체적으로는 통증을 참아내는 편이다.
그리고 다시 저녁.
가족들과 과일을 먹던 중 입술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앗’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 모양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일곱 살 난 둘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 괜찮아요?”
“응 괜찮지 그럼.”
“근데 엄마가 좀 전에 ‘아야’라고 했잖아요. 아픈 거 아니에요?"
둘째 똘똘이는 특유의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으응, 사실은 엄마가 이든이한테 구내염이 옮았나 봐. 입술이 아주 심하게 헐었어. 그러다 보니 좀 아픈 것 같아. 그래도 엄마는 엄마라서 괜찮아.”
그러자 둘째는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바라본다.
“그럼 아픈데 참는 거예요?”
“응 엄마는 아픈 상처가 있어도 잘 안 아픈 거야.”
그러자 둘째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묻는다.
“엄마, 그럼 저도 아빠 되면 안 아프겠네요?
아이가 던진 질문이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요한이도 아빠가 되고 싶어?”
“네, 그럼요.”
“그럼 요한이는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거야?”
“저는 네 명이요!”(한 치의 고민도 없다…;;)
“남자랑 여자 중에서 어떤 성별이면 좋겠어?”
“남자 두 명이랑 여자 두 명이요.”
“그래, 나중에 요한이 네 명 낳으면 엄마가 돌봐줘야겠다. 아휴 귀여워라 우리 요한이.”
그러자 화장실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열한 살 난 첫째가 대화에 끼어든다.
“요한아 근데 너 그거 알아?”
“뭔데 형아?”
“내가 잘 지켜보니까,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어지는 거야. 대신 하루하루는 아주 보람차지! 맞죠 엄마?”
아이의 말이 너무 모범 답안이라 도저히 대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연하지, 완전히 정답이네~! 그런데 얘들아, 엄마가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아이가 많을수록 좀 힘든 건 사실인데, 아이가 많은 만큼 인생이 훨씬 행복해지는 것 같아. 이건 비밀이니까 너희만 알아둬.”
웃고 또 웃으며 아이들과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나의 소유물이 아닌 줄 알면서도 피곤한 날은 피곤한 대로, 아픈 날은 아픈 날대로 아이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툴툴거리는 모습만 보여주곤 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못내 아쉬웠는데, 아이들은 그럼에도 엄마로서의 내 삶을 보람차게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이를 넷이나 낳고 싶다는 걸 보니 복닥거리고 정신없는 다둥이 부모의 삶이 영 나빠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오늘도 남은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자려면 조금 더 밤이 깊어야겠지만, 오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찬’ 날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