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둘째 아이 등원을 준비하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 심땡땡 조합원님? 한살림입니다. 십분쯤 후에 주문하신 물품이 공급될 텐데 보냉 포장을 하지 않겠다고 체크가 되어 있네요. 냉동 고기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제가 급하게 주문하느라 체크를 못했나 봐요. 죄송하지만 보냉 처리해서 공급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공급 물품이 각각 상자와 아이스박스에 담겨 2층짜리 탑처럼 단정하게 쌓여있다. 업체에서 주문해서 먹이던 이유식이 동날 때쯤에 맞춰 이유식 재료와 아기과자를 주문해 둔 것이 도착한 것이다. 아기의 모세 기관지염이 다 나아갈 때쯤 이유식 재료들을 주문했고, 오래간만에 이유식을 만들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쳤다.
어쩌면 좋을지.
다양한 식료품들이 유기농 딱지를 달고 넘치게 준비되었는데, 아기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고열 대행진 중이다. 이유식 먹보 아기였는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평소 이유식 양의 3분의 1만큼만 먹고는 작고 귀여운 입을 앙다물고 물러난다.
난감하다.
아이가 아프니 집은 엉망에다 비상이고 아이는 먹지 않으려 들고(떡 뻥, 바나나, 우유는 잘 먹음), 이유식을 만들고자 했던 의욕은 바닥을 찍는다. 이 재료를 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냄비 앞에 서서 실리콘 주걱을 휘휘 젓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오늘도 야근 확정이다.
이유식 재료를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주문하다니, 주문하던 날의 나를 혼쭐 내주고 싶지만 그땐 몰랐으니까. 아기가 이렇게 곧바로 아플 줄이야.
어머님은 주말에 보내드린 아기 사진이며 동영상에서 아기의 발병 원인을 찾아내 한마디 거드신다.
“교회 놀이터에서 찍은 사진 보면서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던데…많은 아이들이 스친 곳인데 병균이 얼마나 많겠어….”
아뿔싸. 내가 그 영상을 왜 보냈을까. 마냥 귀엽다고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하고 전송 버튼을 누른 경솔한 나를 또 한 번 혼쭐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아기가 아플 줄 알았나 뭐….
아기가 아픈 것 같다는 한마디에 친정엄마는 폭풍 잔소리를 토해내신다.
“그러게 애를 여기저기 너무 끌고 다니더라.”
아플 줄 몰랐으니까 그랬지 뭐….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면 수차례의 과거 회상과 자책 타임을 갖는다. 이번에도 별수 없이 거치는 과정이다.
아니 뭐 누가 아플 줄 알았나?
그러니까 사실은 괜찮은 거다. 자책은 접어두고, 책망과 원망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기로 한다. 이제는 아기를 잘 케어해서 회복시키는 데 집중할 시간이다.
아플 줄은 몰랐지만, 곧 나을 거라는 건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