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라 Sep 19. 2020

육아. 아이도 저도 성장하는 중입니다.

아이와 함께 독서 경진대회에 출전한 이야기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아이와 함께
글쓰기 인생의 첫 도전을 했다.
그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첫 도전이었다.


9월의 어느 날,
아이의 알림장에 ‘무거동 독서 경진대회’라는 제목과 함께 간단한 안내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보통 대회 공고문 등은 학교 측에서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에는 게시가 되지만, 알림장에는 따로 안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독서를 권장하는 담임 선생님이셔서 그런지 알림장에 해당 내용을 따로 넣으시고 공고문까지 첨부를 해 주셨다.


가정통신문이었다면, 가볍게 보고 넘겼을지도 모르지만-
알림장에 소개된 덕분에 꼼꼼히 읽어보며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동 독서 경진대회’ 모집대상은
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었고,
나는 당당히 ‘일반부’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의 가지를 조금 더 뻗어
아이도 ‘도전’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독서노트(‘책 읽는 눈 아름다워라.’ :이름도 너무 예쁜 독서록이다.)에 매일 1-2편의 독서노트를 기입하던 습관이 있으니, 아이에게서 독서 후 감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처음 쓰게 되는 원고지와의 만남이라던가,
평소보다 더 많은 글자를 적어 내려가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아이의 의향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분량이나 내용에 대한 부분은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에게 슬며시 독서 경진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뒤이어 엄마의 ‘도전’ 의사를 알렸다.
그리고,
“이삭이도 엄마랑 같이 해 볼래?”
 
“좋아요, 근데 상 못 받으면 선물 못 받아?”

음, 그래 선물이라...
아이에게 상을 받는 것은 이 ‘도전’에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먼저 설명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엄마가 이삭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다.
‘도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멋진 생각이니 말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동화책을 다시 읽으며 아이의 감상을 이끌어 냈다.
짧았지만, 아이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감상이었다.


아이의 감상 내용을 따로 기록해 두고,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 다녀오는 사이 동네 문구점에 달려가 원고지를 한 묶음 사다 두었다.


그날은 독서 경진대회의 마감 날이었다.


도전을 마감날까지 미루고 있었던 이유는
‘할까 말까 함정’ 때문이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미루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내가 주로 빠지는 함정이다.
이번에도 ‘할까 말까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뒤늦게 마음을 다잡고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 간 사이
미리 써두었던 나의 독후감을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몇십 년 만에 원고지를 마주하니 작성법이 가물가물했다.
‘원고지 작성법’이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에 검색을 하고,
매뉴얼에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의 원고지 작성을 도왔다.
아이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아이는 진지했지만,
글자 수가 늘어날수록 표정은 굳어갔다.
아이는 마지막 두 글자를 남겨 놓고는
“엄마, 나 죽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그래 이삭아, 죽을 것 같겠다. 그런데 두 글자만 쓰면 이제 끝이야!! 정말 멋져. 이렇게 쓴 것만으로도 대단해!”



아이는 울상을 한 채 마지막 두 글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그러더니 금방 화색이 돌며,

“엄마 연결 큐브 블록 언제 온대?”

독서 경진대회에 참가하면 상으로 주기로 했던 블록이다.
아직 주문도 하지 않은걸 언제 오냐고 묻는 걸 보니,
블록 하나만 생각하며 글자 수를 채워갔나 보다.


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어렵게 채워 낸 아이의 원고지 두 장이 그 어떤 것보다 값지게 보였다.
작은 도전이지만 아이가 해낸 것이 참 예뻤다.


초등학생부문은
‘원고지 6매 내외’라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었지만,
우리 1학년 꼬마에게는
원고지 페이지수는 전혀 중요하지 안 났다.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과,
힘들지만 도전을 해냈다는 것이 이미 큰 선물이 되었다.


둘째 아이의 하원 후,
나의 독후감도 마무리를 하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인 ‘새마을 문고’에서 ‘새마을’이라는 두 글자만 떠오르는 바람에 택시 기사님께 ‘새마을금고’로 가자는 말씀을 드렸다.


새마을금고에 도착을 했다.
원고 마감시간은 5시,
우리의 도착시간은 4시 44분.


큰아이와 한 손을 마주 잡고,
작은아이는 한 팔로 들쳐 안은 채
새마을금고로 달려 올라갔다.


금고 직원들은
“여기 왜 오셨어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어, 무거동 독서경진대회 원고를 제출하러 왔는데요...”

“아, 그건 새마을 문고 일 것 같은데요? 잘못 오셨네요.”

“네? 아! 문고 군요. 네 감사합니다,”

땀을 삐질거리며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 자리에 서서 네비를 찍고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새마을 문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까와 같은 자세로 절반 정도는 뛰기 시작했다.
땀은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4시 50분,
지금 막 사우나에서 나온 모습을 한 우리 셋은
새마을 문고에 무사히 도착했다.


정말이지 다행인 것은,
새마을 문고의 유일한 직원분은
넘칠 정도로 따뜻하게 친절한 분이셨다.


땀을 빠직빠직 흘리며 연락처와 주소를 적고는,
원고를 제출했다.
코로나로 원래 개방을 하지 않는 문고에
우리 셋을 위한 불빛이 들어왔다.


감사 인사를 하고,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아이들과 문고를 나섰다.
4시 59분.
기한 내에 제출을 완료했다.


아이와 나의 첫 글쓰기 도전 미션을
막 완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엄마와 마주 앉아 글을 써줘서 고맙고,
길을 잘못 들어 땀을 두 배나 더 흘리게 한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와 줘서 고맙고,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줘서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아파트의 놀이터를 두 군데나 들러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들에겐 그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네 식구가 한자리에 둘러앉았을 때,
우리는 오늘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참 바빴다.
그리고 그 덕에 또 기분 좋은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마음에 여러 번 그렸을
‘연결 큐브 블록’을 주문했다.


나의 첫 글쓰기 도전을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해냈다.
서툰 도전이었고,
결과를 바라본 도전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의 도전은
더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 먼지야 잘 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