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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Oct 26. 2023

첫째 엄마의 모든 처음들

feat. 방과후 학교 공개수업

첫째 아들이 벌써 4학년 가을을 맞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게 엊그제 같고, 학부형이 된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4학년 이라니 변함없이 같은 속도로 흐르는 시간은 인간의 영역으로는 제어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부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엊그제 같은데 라는 표현이 너무 흔한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표현 말고는 도저히 딱 떨어지는 표현을 찾지 못해서... 오늘 또 한 번 '엊그제'를 쓰는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첫째 아들의 첫 방과 후 참관수업이 있었다. 코로나 시즌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는 학교 건물의 문턱을 넘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 시즌의 개막과 동시에 그간 꽁꽁 갇혀 있었던 부모 참관 행사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에 들어서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신발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렸는데 이제는 덧신을 신거나 실내화로 갈아 신고 어깨를 딱 편다음 학교 안으로 스윽~ 들어간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 과목의 방과 후 수업 참관을 다녀왔다. 물론 우리 꼬마 아가씨를 대롱대롱 매달고.


첫 번째 역사 수업.

아이의 영어 방과 후 수업과 시간이 겹쳐 상급반 수업으로 넣었더니 6학년 생 다섯 명과 4학년 생 두 명이 교실에 앉아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내 눈에는 우리 아이만 들어왔고, 아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나도 같이 진땀을 흘리며 수업을 들었다.

6학년 생들은 압도적으로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깊었다. 수업을 참여하는 정도가 수동이 아닌 완전한 능동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제외한 다른 4학년 아이는 완벽하진 않아도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약간의 흥미와 엄마의 추천을 어깨에 이고 지고 수업에 참여하는 우리 아이는 수십 년 전 한국사 시간의 나와 닮아 있었다. 선생님을 보고는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나도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그런 상태. 참 희한하다. 어쩜 그렇게 우리 아이의 뒤통수만 보고도 이 모든 게 읽히는 걸까... 수업을 마무리하며 약간의 속상함과 실망감을 느꼈지만 아이에게 드러낼 수는 없어 그저 웃으며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수업 중에 문제를 푸는데 왜 제출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잘 못한단다. 자기는 역사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도 역사가 재미있는 편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행인 건가.

처음이라 잘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하면 6학년이 되면 같은 반 누나들처럼 잘할 수 있게 될 거라며 땀에 젖은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속상하고 실망스러웠던 마음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는 애쓰고 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생소한 역사 수업에서 잠깐잠깐의 즐거운 순간들을 붙잡으며 한 학기 반을 잘 지나왔다. 하지만 아직 성취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가 참 안타깝다. 방과 후 수업이나, 지나온 학원들에서 아이의 상황들을 짚어보면 우리 아이는 빠르게 습득하고 민첩한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성취감을 많이 느끼지 못했고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버티다 버티다 힘들 땐 결국 학원을 그만두고 잠시 쉼을 가지곤 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아이가 가진 능력이나 성향보다 아이를 더 높이 평가하며 더 끌어올리려고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응당 부모의 역할이니까.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 옳다고 여겨왔다. 아이는 학교 정규 수업과 학업 성취도에서는 본인이 만족할만한 속도와 방향과 성취를 느끼고 있지만, 그 이외의 방과 후 활동에서는 더딘 것이 눈에 띈다. 유치 초등 저학년의 시기에 엄마표로 느리게 느리게만 키워왔던 나의 육아관과 아이의 성향이 만나 고학년을 코앞에 둔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닌지 의미 없는 고민이 한 겹 더해지고.... 엄마표를 외치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4학년을 만들어 버린 건 아닌지도 또 한 번 되돌아보게 되고.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서 한 시간을 앉아 있다 나오는 길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다.

그럼에도 땀을 빠질 빠질 흘리며 학교를 오가는 아이가 안쓰럽고 대견해서

저녁반찬은 고 기 반 찬.



참 무거운 화요일을 지나, 두 번째 방과 후 수업에 참관을 했다.

영어 고급반.

아이는 친한 친구 둘과 쿵짝을 맞추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법수업은 어렵다고 하더니 리딩 수업에서는 아이가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게 느껴져서 나도 같이 행복했다.

더 길게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예쁘고 더없이 기특한 우리 아이의 오늘 저녁은 짜 파 게 티.


첫 아이의 첫 순간을 같이하는 일은 늘 고되고 설레고 행복하다.

늘 엄마의 실험대상이 되어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의 대상이 되는 미안하고 고마운 우리 첫째,

사랑해.

다시 생각해 봐도 너는 잘하고 있고

나는 좀 실수가 많지만

나도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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