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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Nov 11. 2023

아버님 오늘은 제가 냅니다.


아버님이 오셨다.

화요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오셨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아버님의 생신이 겹쳐서 생신 상을 차렸다. 대단한 생신 상은 아니었고 평소에 아버님과 식사할 때보다 메뉴를 두어 가지 정도 추가해서 준비를 했다.

빛나는 두어 가지의 메뉴 덕분에 그럴듯한 생신 파티가 지나갔고, 거기에 더해 무언가를 아버님께 더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아버님이 내려오시면 3박 4일을 지내시는데 그중 아버님과 나의 점심 한 끼는 짬뽕집 데이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미 짬뽕집 데이트 카드를 이미 썼는데도 아버님께서 외식을 한 번 더 하자고 하셨다. 기회다 싶어 아버님께 회를 대접해 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파트 건너에 새로 생긴 횟집에 들어서니 널찍하고 쾌적했다. 횟집에 주도해서 가본 적이 거의 없다 보니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아버님이 먼저 점심특선 물회를 고르신다. 내 쪽에서도 고민 없이 물회를 선택! 점심 특선이라 매운탕까지 서비스로 끓여 주신다. 저녁에 먹을 회 2인분까지 포장 주문을 해 놓고 기다리는 틈에 몰래 가서 계산을 했다.

식당에서 나가려는데 아버님께서 내가 계산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시고는 “야 이눔아..” 하시며 계산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신다. 벌컥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아버님 생신 선물로 식사 대접해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서로가 호탕하게 웃으며 식사비 결제 실랑이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  11년 만에 시아버님께 내 돈 내산 식사를 대접해 드릴 기회를 얻었다.


아버님께 점심 한 끼를 사 드리며 대단한 호의를 베풀고 효도를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버님께는 늘 받는 것이 더 많다.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놀아 주시고 게다가 입 짧은 둘째를 잘 먹이기 위해 태어나신 분처럼 애를 쓰셔서 결국은 둘째가 잘 먹게 만드시기까지 한다. 그리고 식구들 먹으라고 고기도 잔뜩 사다 주시고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시고 채워 주시기도 한다. 그러곤 언제나 “에미가 힘들어서 어쩌냐. 에미가 똥 싸는 거(힘들어 죽겠는 거) 내가 다 안다. 그래도 어쩌냐. 잘 챙겨 먹고 지내야지. 나 여기 있는 며칠 동안 살 좀 찌자 에미야.” 이런 말씀을 건네시며 나의 식사 시간만큼은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해 주시고 챙겨 주신다.


아버님이 돈이 많으셔서, 그리고 세상사에 관심이 없으셔서 우리 집에 계시는 며칠 동안 우리들에게 이렇게 올인 하시는 것이 아니다. 재정적인 여유가 넘치시는 것도 아니고, 세상적 관심이 전혀 없으신 것도 아니지만,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가진 걸 다 내놓으시고 넘칠 정도로 희생을 하신다.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모르지 않으니 자식들도 어떠게 해서든 잘 챙겨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난다.


늘 아버님과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셋째 임신을 하던 중에 아버님은 극심한 반대를 하셨다. 셋을 낳아 힘들어서 어떻게 할 거냐고.

우리 부부 입장에선 생명의 출산을 두고 반대라는 말은 전혀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이기에 정말로 마음은 힘들었지만, 실제로 우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그땐 아버님이 너무 하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끔찍한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새로 태어난 손주까지 마음껏 이뻐 하시도록 지켜보고 응원을 보탠다.

갈등과 행복은 종이 한장 차이이다. 정말이지 마음먹기 나름이다. 아버님과 함께 할 시간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만큼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들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채워 넣기로 한다. 길지 않은 인생, 좋은 일들만 기억하기에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아버님.

오늘은 제가 한턱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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