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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Sep 28. 2020

미니멀. 나의 정리독립 이야기.

나의 정리습관의 뿌리를 찾아서...


매일매일의 정리 생활을 공유하고 cheer up 해주는 오픈 채팅방인 ‘스몰스텝 정리 방’에서 정리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정리 백일장이 열렸다.

정리 방 방장님의 탁월한 실행력에 또 한 번 감동을 받고,
‘글감’을 주심에 감사하며,
나의 정리 생활을 되짚어볼 기회를 얻었다.


나의 정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걸까?

엄마.
엄마다.
이 모든 정리 습관과
정리에 대한 마음은 나의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순백색의 정제된 인테리어로 꾸며진 집은 아니었지만, 늘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집이었다.
엄마의 기준에 맞춰진 질서 정연한 집이었다.


엄마는 미니멀리스트라기보다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우리 집의 모든 물건은 질서 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흐트러짐이 없었다.


언니와 나는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에서 신발을 탈탈 털고 욕실로 직행을 했다.
코로나도 없던 그 시절에 우리는 외출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고, 조금이라도 먼지를 뒤집어쓴 날엔 곧바로 샤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엄마가 깨끗하게 빨아둔 실내복을 입고 집안을 거닐었다.


집은 언제나 깨끗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어김없이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우리 엄마는 언제나 군기 대장으로 돌변해 있었다.


엄마가 무서워서 열심히 청소를 도왔다.
청소 후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마시게 될
딸기 셰이크를 기대하며 엄마를 도왔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이불과 실내복을 기대하며
청소에 동참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중에 엄마가 되면 대청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정리에 있어서 결벽스러운 엄마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조금은 너저분하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늘의 사나운 정리 대장 엄마보다는
어제의 다정했던 엄마가 더 좋은데...
하는 생각도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난 그렇게 늘 깨끗하고 쾌적한 집에서 자라났다.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기숙사에서 지내며 엄마의 잔소리는 없었지만,
나 홀로 정리는 영 어려웠다.
늘 엄마가 해 주던 일들이었고,
엄마를 떠나고 보니
당최 뭘 어찌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의 물건들은 적당한 정리와 쑤셔 넣기 기법으로 기숙사 방의 곳곳을 채워 갔다.
그렇게 나의 정리 독립이 시작되었다.

-


가정을 꾸렸고,
정리에 관한 열쇠는 완전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사랑하는 짝이 생기고,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정리는 더 어려워졌다.


가족을 챙기고 아이를 챙기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독서 시간까지 챙기려다 보니
정리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아이가 둘이 되었고,
정리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리에 너무 신경을 써서인지
정리를 너무 못해서 인지,
어느 순간-
정리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정리에 쏟는 에너지를 줄여보기로.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조금만 정리해도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정리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내 가족이 가진 것들을 ‘비워내는 것’이었다.
비우고 줄여서
미니멀한 삶을 꾸리면
정리에 대한 부담도 확 줄어들 것 같았다.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들춰보며
그들이 가진 삶의 공백을 들여다보는 것이 참 좋았다.


나에게도 ‘물건’ 대신
‘공백’을 들여놓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시작되었고,
그에 맞는 정리 생활도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비워내는 것에 온통 마음을 쏟았고,
시간이 흐르며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정리 습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버릴 것이 많고
정리 상태가 못마땅할 때가 많으며,
나의 어릴 적 결벽스러웠던 우리 엄마를 닮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쑥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정리 독립을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15분 정리 마법을 실천하고 있다.
출근 전 딱! 15분 간
거실과 침실의 바닥에 널려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로봇청소기에게 뒤를 맡기고 집을 나선다.



매일 한 포인트라도 정리하기 위해 애쓰며,
스몰스텝 정리 오픈 채팅방 활동을 하고 있다.
(최고의 동기부여 방법은 ‘함께함’이다.)



그리고 옷과 수건은 열 맞춰 쏙쏙 접어 넣어
넣기도 꺼내기도 쉬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주말에는
‘너도나도 막 어질러보자.’ 시스템으로
온 식구가 열과 성을 다해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주말에 온 식구를 부려가며 대청소를 해봤더니,
생각나는 건 ‘군기 대장’ 친정엄마의 얼굴뿐이었고,
대청소 후에는
아이들이 5분도 안되어 집을 어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별한 날들을 제외하고는
주말은 모두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외출을 한다.
정리 때문에 가족의 ‘행복’을 빼앗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나의 정리는
엄마로부터 시작되었고,
엄마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정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고,
덕분에 품이 많이 들지 않는
작은 정리 습관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어릴 적엔
엄마의 정리 결벽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엄마 덕에 정리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나의 정리 독립이
앞으로도 천천히
그러나 안정된 모습으로
잘 꾸려져 나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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