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1. 첫째 아이의 분리불안을 사랑으로 바라볼 것.
결혼 한지 1년 5개월이 흐른 어느 여름.
남편의 직장 덕분에(?) 울산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울산 땅이었지만,
사랑하는 남편 하나만 딱 믿고 내려와서 울산 라이프를 즐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으니...
친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고
부르고 싶을 때 불러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첫해에는 다행히 신생아였던 우리 첫째 아이 덕분에
친구에 대한 갈증을 느낄 틈도 없었다.
나는 ‘전투 육아 부대’에 막 입대한 신병이었기에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물리적 거리가 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저 그리웠고,
수시로 카톡이며 사진 전송을 해댔다.
우리는 랜선 친구처럼 그렇게
서글프지만 소중하게 소통을 했다.
늘 오랜 친구들에게만 정을 붙였던 나도-
이곳 울산 라이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주된 사회활동은 교회에서 이루어졌기에
교회에서 한 명 두 명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과 친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새로운 친구들이었다.
가까이 있었기에
얼굴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가끔은 교회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점심시간에 잠시 틈을 내어 만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들과
저녁에 한번 만나 원 없이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이를 낳고-
저녁 시간을 비우고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누가 그러지 말라고 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
밤에 나가는 것을 즐기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럴 기회도 없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첫째 아이도 이제 1학년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워낙 잘 떨어져서
‘고민 없이’ 그녀들과 차 한잔 하며 수다를 떨기로 약속을 해 두었다.
토요일 저녁.
집을 나섰다.
두 아이는 비교적 쿨하게 인사를 하며 나를 보내주었다.
두 아이가 아빠와 함께
평소보다 조금 더 즐겁게 지내다가 무사히 잠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채 집을 나섰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전화가 울린다.
수화기 너머에 훌쩍이는 첫째 아이의 목소리.
“엄마.... 언제 와?
엄마...
엄마... 오고 있어?”
“이삭아 엄마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야.
아빠랑 눈감고 있으면 갈게.”
“엄마아~~~
엄마가 있어야지.
멀리 있어?
엄마 오세요~엉엉엉...”....
그 후로 세 번의 전화가 더 걸려왔다.
“엄마, 엄마, 엄마...”
다 큰 형아라서.
일 학년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평온한 둘째와 달리
오히려 첫째가 울고 불고 난리다.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에서 아이는,
“엄마, 올 때 되면 오세요. 잘게요.(훌쩍훌쩍)”....
원래의 나였다면,
이미 집으로 들어갔을 텐데...
일부러 버텼다.
버티고 버텼다.
‘나도 좀- 좀- 좀!! 내 시간 좀 갖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아이가 잠드는 그 시간에
엄마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더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울던 아이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 오후.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도 가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몇 시간 집을 비울 수 있다.
그럴 땐 아빠랑 자는 거다.
하며 이야길 이어나갔다.
“아니야 나도 따라갈래- 엄마 가면 안돼!”
하며 또 울먹이기 시작하는 아이.
달래고, 다그치며 다시 천천히 설명을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을 거야.
이삭이가 친구 집 놀러 가는 것처럼 엄마도 친구 잠깐 만나는 거야. 똑같이 생각해. 엄마가 어딘가로 떠나는 게 아니야.”
한참을 이야기하자
아이도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나도 다 안다.
앞으로 3-4년만 지나도 첫째 아이는 나보단 친구들을 더 찾을 것이다.
나의 짤막한 부재 따위는
더 이상 아이를 울리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커 왔으니까.
그게 자란다는 거니까.
아이와 대화를 끝내며 잠시 생각했다.
아이가 엄마를 찾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 짧은 시기를 좀 더 누려보자고.
나중엔 엄마랑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갈 테니...
나는.
아이가 엄마를 충분히 사랑해주는
이 행복한 때를
그리고 이 짧은 시간을
마음껏 누려보기로 했다.
*타이틀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