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 버릴 수도 없는 성격, 우유부단함에 대하여.

11화. 아침부터 나의 밑바닥을 마주한 날.

by 다니엘라


어젯밤.
네 살배기 둘째 아이의 왼쪽 발에 붉은 반점이 너댓개 보이더니 손에도 비슷한 반점이 하나가 생겼다.
아이가 모기에 물렸을 때의 양상과 비슷했지만
한꺼번에 모기가 여러 군데를 물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수족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등원을 미루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보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수족구는 아닌 것 같다고 하신다.
붓기가 동반된 붉은 반점을 보신 의사 선생님은
모기 혹은 무언가에 물린 자국 같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아이가 한창 모기에 물렸을 때 양상과 비슷했고, 간밤에 남편이 모기를 잡았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게다가 붉은 상처가 더 늘어나지도 않았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어제저녁 그만큼이었다.


그럼에도 한쪽 발에 너댓개가 난 건 좀 많은 게 아니냐며
“혹시 수족구가 맞으면 어쩌죠?”
라며 의사 선생님 앞에서 ‘오두방정’을 떨어 버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못 믿는 쪽 보다는,
우리 아이의 몸이 부디 정상이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수족구가 아니라는 말을 자꾸만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아니라고 하면 깨끗하게 접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가면 되는데,
괜한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나마 의사 선생님은 원래 잘 알고 지내는 분이라
진료실 문이 닫힐 때까지 웃는 얼굴을 유지해 주셨다.^^;;
문이 닫혔을 때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상상하기도 싫다.


병원에서 내려와 아이를 차에 태우는데,
‘얘를 선교원에 보내 말아~’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쩌죠?”
그다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쩌죠?”.......
수화기 너머 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워쩌긴 뭘 워쪄~! 병원에서 괜찮다면 얼른 보내야지. 후딱 보내고 자유의 허리끈을 졸라매고 출근 혀라!”
하는 반응.........ㅎㅎ


보내? 말아? 보내? 말아? 하는 고민만 15분은 한 것 같다.
마음은 반반이었다.
한편으로는 혹시 선교원에 보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주부터 업무상 바쁜 주간이 펼쳐지고 있는데, 오늘 출근을 못하면 토요일 출근이 확정될 것 같아서 어떻게 해서든 출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결국 아이를 등원시켰다.
의사 선생님을 믿고,
아이의 몸을 믿고,
나의 결정을 믿으며 편한 마음으로 아이를 보냈다.
원장 선생님도 지금은 수족구에 걸린 애들이 없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며, 후덕한 미소로 아이를 맞이해 주셨다.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는 길.
나 홀로 우유부단 대잔치를 벌인 오전의 두어 시간이 너무 부끄럽고 싫어졌다.
나이가 들면 좀 더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
조금 더 어른스러운 단호함과
현숙한 결정 능력이 생길 줄 알았는데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그럴만한 사건이 없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10년 전, 그리고 20년 전 나의 우유부단함은
여전히 나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직장인 시절,
이 버스를 탈까 저 버스를 탈까 고민하는 사이
타야 할 버스 두 세 대를 놓친 기억.

그리고 대학 시절,
선배가 넘겨주는 ‘미국 유학생 스페인어 과외’에 대해
자신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거절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해내지도 못해
결국은 세 달 만에 그만둬야 했던 기억.
등을 포함하여,
우유부단함으로 똘똘 뭉친 웃지 못할 사건들은
치워도 치워도 그대로인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 갯수 만큼이나 많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음을 넘어서
나에게서 떼어내고 싶은 것들일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습관,
변하지 않는 성격이
결국 진짜 나를 이루는 모습이다.


그 모양이 선한 것이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하지 못한 나의 습관도
결국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동글동글하게-
그리고 조금 더 긍정적인 모양으로 잘 가꾸어
조금은 더 나아지는 나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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