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우리 집이 ‘방귀 프리존’이 된 사연
아들 둘을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된 뒤로
세상일에 크게 두려울 것이 없다.
아줌마 로드를 차차 밟고 있다는 증거이겠지...
그럼에도 나의 두려움 지수를 쭉쭉 끌어올리는 파트 하나.
아들의 ‘방귀 폭로’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난해, 아이의 일곱 살 겨울.
아이는 선교원 하원 차량에서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하차했다.
그리고 너무 재미있어서 못 참겠다는 듯,
난데없이 선교원 친구의 아빠 이야기를 했다.
“엄마, 있잖아~ 땡땡이네 아빠가 방귀를 뀌면 땡땡이가 하늘 끝까지 날아간대~ㅋㅋㅋㅋㅋ 땡땡이 아빠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지구가 폭발할 수도 있대!! ㅋㅋㅋ”
(땡땡이 아빠 얼굴을 몰라서 참 다행이다 ㅜㅜ)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와 같이 깔깔거렸지만,
내 마음에는 작은 불안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런데 이삭아, 너도 선교원 가서 엄마 아빠 방귀 이야기 했어?”
“아니, 나는 안 했어. 엄마 아빠 방귀소리가 재미없어서...”
아이의 망설임 없는 대답 한마디로
다행히 그날은 위기경보가 가볍게(?) 꺼졌다.
아이가 커가며-
아이의 입술에 자유가 주어지고
아이가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많아질수록
‘엄마의 방귀’에 대한
아들의 폭로가 두려워진다.
아무래도... 방귀 폭로에 대한
우리 가족 내의 법안이라도 마련해야겠다.
우리 네 식구는 서로에게 ‘방귀’를 완전히 텄다.
우리 가족이
서로에게 방귀를 트게 된 역사를 따라 올라가 보자.
때는 신혼이었다.
남편과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 없어 보이는 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뷔~웅.” (정도로 기억된다...)
남편의 ‘첫 방귀’였다.
‘새색시’ 였던 나는 얼굴이 후끈거렸다.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웃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남편을 다그치는 쪽을 택했다.
“아니, 어떻게 제 앞에서 방귀를 뀔 생각을 다 해요. 날 존중하지 않나 봐...”
그 당시 남편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방귀가 새어나간 것만 해도 억울하고 부끄러웠을 텐데 핀잔까지 듣다니!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나는 임신을 했고,
임신 중기의 뽈록한 배로 펭귄 워킹을 하던 때였다.
남편과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있었는데,
“퓍-!”
하고 내쪽에서 방귀가 기습적으로 새어 나와 버렸다.
정말로 사고였다.
손을 쓸 틈도 없이 절도 있는 방귀가 새어 나왔다.
(다행히 무취 버전의 방귀였다.)
그렇게 임신을 핑계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리 집은 ‘방귀 프리존’이 되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지난날, 엄마 아빠의 진땀 나는 쟁취로
날 때부터 ‘방귀’에 대한 자유권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 마냥,
아카펠라를 하는 것 마냥
방귀를 주고받는다.
누군가에겐 교양 없는 네식구로 보일지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네식구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신뢰이고 사랑이다.
그리고 때때론 가족 중 누군가의
유니크한 방귀소리가 웃음을 선사한다.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예의를 차리고
소화작용에 대해서도 철저히 절제했을 가족들에게
집에서 만큼은 ‘자유’를 누리게 해 주고 싶다.
(우리 집이 ‘방귀 프리존’인 탓에 시아버님이 오셨는데 방귀가 몰래 새어나간 ‘사고’도 있어서 상황에 따라 조심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밖에 나가 친구들과 대화의 도마 위에
엄마 아빠의 방귀 이야기를 올려놓을까 봐
여전히 겁은 나지만,
‘방귀 프리존’인 우리 집이 참 좋다.
글을 마무리하며...
역시나, 서른의 중간 고개를 지나친 나이에도
방귀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다.
아이나 어른이나 방귀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 꼭두새벽부터 방귀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픽픽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