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명절증후군을 이기는 며느라기의 결심 노트.
시댁에서 친정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시댁에서 지내는 삼일간
내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제사도 지내지 않는 시댁에서
나를 괴롭히는 이 하나 없는 시댁에서
내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일주일 전부터 홀로 명절 음식을 준비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두신 어머님은
그저 우리를 반겨 주셨다.
LA갈비 양념을 손수 만드시고,
소고기 뭇국을 정성스레 끓여 주셨다.
나물을 준비하시고,
끼니때마다 주방을 진두지휘하시며
다정한 리더의 역할을 해내셨다.
어느 것 하나 주도하는 법 없이
그저 어머님을 돕는 일에 충실했던 나는
동서의 공백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몇 해 전부터 명절이 되면
손님 역할을 하는 동서네를 마음으로 미워했다.
오색빛깔의 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LA갈비는
정육점에서부터 양념이 되어 오는 것도 아니며,
고소하고 쌉싸름한 다섯가지 나물은
씻고 손질하고 데치고 볶는 공정을 거치지 않고는
흉내도 낼 수가 없는 음식인데,
그걸 혹시 모르는 건 아닌지...
동서가 선하고 얌전한 사람이며,
나와 마음도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만나면 또 반가운 마음으로 대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벌어질 때는
잠시 잠깐 미움의 싹이 돋아나곤 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기름내에 온몸을 맡기며
맏며느리이자 홑 며느리가 되어
꼬박 이틀을 보내고 나면
친정으로 건너가는 길은
어디 괜찮은 휴양지로 떠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내가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 혹은 기대감이 있는데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
마음으로 죄를 짓게 되는 모양이다.
이번 연휴도
둘째 날 오후가 되도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큰 며늘도 산책이라도 좀 다녀와,어여.”
하며 앞치마를 빼앗는 어머님 덕분에
못 이기는 척 집을 나섰다.
남편과 손잡고 걸으며
마음속의 까만 땟국물을 씻어냈다.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나눌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고,
거짓말처럼 마음은 깨끗해져 왔다.
내편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어 고마웠고,
말없이 내 좁은 마음을 읽어주시는 어머님이 계셔서 감사했다.
홀로 리더 역할을 해내시고
며느리의 마음까지 살피셔야 하는 어머님은
명절에 대한 피로감이
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실터다.
그럼에도 지옥보다는
천국의 마음을 택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시댁을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마음을 추스려본다.
남편과 나는
서로만 아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번 명절은, 우리가 산타가 되었다고 생각하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나도 결국은 속 좁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윗동서이다.
명절이 되면 꼰대력이 상승하고,
순간순간 찾아드는 섭섭함은
긴 시간을 지내며 풀어낼 과제로 남겨둔다.
이번 명절을 보내며
남편과 함께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에는,
가족을 위한 산타가 되어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결혼 7년 만에
우리만의 명절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냈다.
당신도 저처럼-
어제오늘을 지내며 섭섭했나요?
억울했나요?
그러면,
우리 그냥 산타가 되고 맙시다.
그게, 우리 마음에 천국을 담는 방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