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대상포진 증상 발현 일주일.
확진 4일 차.
사나흘 간 맹위를 떨치던 물집은 서서히 꼬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같은 자리에 짙은 감색의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사그라들지 않을 것만 같던 포진 군집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보며, 회복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아이가 유아 대상포진 확진을 받으며
격리 및 요양치료를 시작했다.
3일간 등원을 하지 않으며 또래 아이들로부터 격리를 했고, 매일 진~하게 두 시간 반씩 자는 낮잠으로 요양을 대신했다.
아이는 등원을 할 수 없었지만,
출근은 또 다른 이야기였기에
아이는 삼 일간 엄마의 출근길에 동행을 했다.
어이는 퍼즐과 나노 블록, 좋아하는 피규어, 그리고 숫자놀이 책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출근길에 따라나섰다.
엄마의 일터에 동행하는 것을 아이는 행복 그 이상으로 느끼는 눈치였다.
평소에 싫어하는 양치질도 엄마를 따라나서기 위해서 열심히 했고, 퍼즐 가방을 드는 것쯤은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해냈다.
첫째 날,
아이는 퍼즐을 맞추느라 한참을 자리 잡고 앉아 있었고,
도장 찍기 놀이와 나노 블록 놀이까지 골고루 하며 두 시간 이상을 버텨 주었다.
스스로 노는 근육이 상대적으로 더 탄탄한 둘째는,
어디에 둬도 잘 논다. 놀이나 활동에 집중하며 주변에 크게 방해받지 않고, 방해를 하지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며 네 살짜리 아이의 집중력은 서서히 떨어지고, 2초에 한번씩 엄마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은 끝내야겠고,
아이의 요구도 어느 정도 들어줘야겠고...
그래서 아이의 놀이에 잠시 동안 참여를 한 뒤
결국 ‘아기공룡 둘리’를 보여주었다.
미디어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아이들에게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때론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아이에게 달콤한 만화영화 시청의 기회를 주곤 한다.
아기공룡 둘리 덕에 아이는 잠잠해졌다.
최소한의 것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고 점심식사까지 함께 한 뒤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일찍 퇴근길에 나섰다.
아이는 예상대로 카시트에 앉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두 눈을 꼬옥 감고 잠이 들었다.
“휴우~.”
집으로 와서도 아이가 깊이 잘 수 있도록 불필요한 소음은 내지 않았다. 간단한 집안일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삼 일간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며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옆에 앉아있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를 수시로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그러면서 문득,
어릴 적 엄마의 직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예닐곱 살쯤 되었던 어느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일터로 나가셨다.
집에서 쭈욱 우리들을 돌보시던 엄마는 주변 누군가의 제안으로 ‘웅진아이큐’ 방문 판매 사원이 되셨다.
엄마의 일터는 웅진아이큐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동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누군가의 집이 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사업장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일터에는 여기저기 책상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나에게 넘치도록 친절한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었다.
엄마의 동료분들은 양갈래로 묶은 머리를 마음껏 쓰다듬어 주셨고, 어떻게 이렇게 인사를 잘하냐며 스카치 캔디와 복숭아 캔디를 주머니마다 찔러 넣어 주셨다.
그리고 엄마의 사무실 벽면에는 ‘이달의 실적 왕’이라는 유치하게 꾸며진 게시판이 있었다.
직원분들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고, 각각의 사람마다 커다란 사과 스티커의 갯수가 다르게 붙어 있었다.
실적 왕 게시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최순자’라는 엄마 이름에 가장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종종 회사에서 쌀 보관함과 밥솥 거치대, 자전거 등을 상품으로 받아 오셨는데, 그 상품들은 ‘실적 왕’ 게시판과 관련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릴 적 하루를 꼬박 엄마 곁에서 붙어 지냈는데, 엄마가 나에게 귀찮은 내색이나 다그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건 엄마가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아서 일수도 있고 내 기억력의 순기능으로 씁쓸한 것들은 다 지워낸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시절의 엄마를 기억하며,
오늘 우리 아이와 나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지내는 것이 무거운 과제를 껴안은 양 부담으로 다가왔고, 아이를 원에 보내고 누리던 일상이 그립기까지 했다.
아이와 함께한 3일은 고되었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미 아이의 부재 가운데 누리는 자유에 익숙해져 있었고 낮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이미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며 자녀에 대한 ‘희생’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만 7년 차의 엄마가 되었지만,
마음과 행동은 여전히 저 멀리서 부모라는 타이틀을 겨우겨우 쫓아가는 초보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스로의 모습이 아쉬웠지만,
지난 3일간 아이와 함께 지내며,
엄마로서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우선 감사했다.
아직 늦지 않았고,
엄마인 나를 알아가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이의 대상포진은 차차 딱지로 변해가고 감염률도 현저히 떨어질 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월요일 오전 진료를 보고 괜찮으면 등원을 하기로 했답니다.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이웃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아 대상포진을 겪은 우리 아이의 이야기는 완치 판정을 받고 글로 옮겨보기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