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아이들과 함께 친정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한참을 이야기하시던 엄마는,
“오늘 글 봤어.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엄마는.”
하며 나의 글 이야기를 하셨다.
‘아뿔싸.’
지난번 브런치 글이 다음 메인화면에 소개가 되면서 가족 카톡방에도 자랑을 했더니 엄마 아빠도 좀 보자며 앞다튀 브런치 구독을 누르셨다.
그때도 괜히 알려드렸나 하며 아차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설마 나의 글을 계속 지켜보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브런치 글들을 한 번씩 쓰윽 훑으며 검열을 했다.
일단 발행된 글들은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어쩐지 내 마음을 온전히 내보이게 될까 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래서 일부 작가들이 자기 부모가 자신의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릴 적 엄마에게 비밀 일기장을 들킨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지만 금세 마음을 정돈했고, 엄마께 일렀다.
“엄마, 글이 원래 좀 과장이 있는 거예요. 많이 과장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아랫집 분들도 나쁘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엄마는 ‘웃기고 있네’하는 말투로
최여사스러운 멘트를 날리셨다.
“과장은 무슨 과장. 아주 그냥 예민한 사람들이네. 마음 편히 일층으로 알아보자. 엄마가 기도할게.”
엄마가 걱정할까 봐서인지, 엄마에게 무턱대고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나도 모르게 내 글을 부인하는 모습을 비춰내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에게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보여드리는 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비밀 이야기는 늘 까만 밤 언니와 나란히 누워 나누었고,
진로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고민은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하며 나누었다.
평생 내 마음보다 더 많이 내 마음을 읽으며 나에게 공감하고 나를 누구보다 걱정해 주셨던 엄마인데,
왜 이렇게 엄마 앞에서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울까?
어릴 적부터 엄마와의 관계를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엄마는 늘 ‘넘치게’ 사랑해 주셨고, ‘넘치게’ 걱정을 하셨다.
아마도 그 사랑은 엄마가 가진 것의 십 분의 일도 안되게 드러내신 것이겠지만, 어린 나에게도 충분히 느껴지는 사랑이었다.
속상한 일이 생겨 엄마에게 이야길 하면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며, 감사하면서도 때론 겁이 덜컥 나곤 했었다. 엄마가 혹시 그 아이에게 쫓아가서 야단이라도 하실까 봐. 그래서 나와 그 친구의 관계가 완전히 깨져 버릴까 봐.
실제로 엄마가 그렇게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엄마는 그저 우리 앞에서 넘치게 공감을 하신 거였고, 엄마 나름의 위로 방식이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이해할 리가 없는 나는 사춘기를 지내며 점차 엄마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감정 이야기는 친구들이나 언니를 붙잡아놓고 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랜 습관으로 남아
지금의 내 글을 읽는 엄마의 두 눈이
반가운 독자가 아닌 부담의 눈길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이제부턴 글을 쓸 때
엄마의 눈치를 봐가며
수위를 조절해서 써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수위조절’ 따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엄마의 딸로 오래오래 글을 쓸 텐데,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 같은 마음 때문에
‘가짜 이야기로 가득 찬’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도 이젠 한 명의 독자 좌석에 자리를 내어 드리고,
솔직 담백한 나의 이야기들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도 나의 글을 엄마가 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