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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댓가 없는 사랑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by 다니엘라


어제 오전 이케아에 다녀왔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가장 먼저 내다 버린 것은
우리 부부의 첫 크리스마스 때 모던하우스에서 9,900원에 구매한 미니트리였다.


수년간 잘 사용을 했으나,
최후에는 그 모양이 흉측해져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 2-3년 간은 베란다에 전구로 트리 모양을 만들어 간단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 가는 걸 보며,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장식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작정을 하고서
크리스마트 트리를 구입하러 이케아까지 다녀왔다.


미리 마음먹어둔 나무 사이즈를 확인해서 담고,
너무 과하지 않은 만큼의 오너먼트를 구매하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필요했던 스퀴즈와 지퍼백을 담고 10개들이 2천 원대의 건전지도 담았다.
그리고 이제 내려와서 계산만 하면 되는데,
매장 2층 길목에 귀여운 곰인형이 잔뜩 쌓여있다.
한 마리에 1,500원...


두어 달 전.
첫째 아이의 먼지/진드기 알레르기로 인해 집에 잔뜩 보유하고 있던 인형들을 남김없이 내다 버렸었다.
눈물의 이별이었지만,
아이들은 이내 잊고 새로운 놀잇감들과 시간을 보내고,
인형을 대신해 엄마 아빠를 꼭 껴안으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귀엽고 작은 곰인형이,
그것도 단모의 털 날림 적은 인형이
천오백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으니...
자꾸만 눈길이 갔다.


곰인형 주변을 빙빙 돌다가
받으면 좋아할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곰인형 두 개를 쇼핑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잔뜩 기대하며
선물 증정식을 거행했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 때의 그 표정과 태도는
주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서
우리 부부는 종종 아이들이 선물을 받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선물 증정식의 영상은 남편이 맡고,
나는 까만 주머니에서 꺼낸 선물을 준비했다.
(천오백 원짜리 인형 하나 주면서 너무 과한 증정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ㅋㅋ)


자아~ 원, 투, 쓰리~ 짜잔!!
(아이들 표정 변화에 주목해 주세요. ㅋㅋ)

점차 어두워지는 표정 ㅋㅋ

눈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눈을 감고 기대를 하던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약 2초간 기뻐했지만,
돌고래 소리를 내거나 큰 기쁨은 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3초 째부터 사실은 크게 마음에 드는 선물은 아님을 내색했다.


아마 아이들이 기대한 것은
곰인형이 아닌, 레고나 커다란 과자 등이었던 것 같다.
둘째는 곧바로 인형을 반납하며,
“엄마, 나는 이거 안 하고 먹을 거 할래요. 먹을 거 주세요.”


이 분위기를 어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이케아에서 사 온 알파벳 쿠키를 꺼내 들었다.
다신 한 번 짜잔!!
다행히 아이들은 사라졌던 잇몸 미소를 되찾았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아이들도 기대하던 바와 너무 달라서 당황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어젯밤의 선물 증정식만 생각하면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온다.
아이들의 감출 수 없었던 실망스러운 표정이란...ㅎㅎ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싫은 것은 싫고, 좋은 것은 또 너무 좋다고 표현을 한다.


늘 주는 것보다 더 넘치게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었기에
이번에도 내심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건넸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2-3초 만에 너무 솔직한 얼굴을 드러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의 요즘의 속마음을 잘 읽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작은 인형 하나 건네면서 큰 반응을 기대했던 나의 작은 마음이 너무 쑥스러워졌다.
(남편은 자꾸만 그 인형이 얼마 짜린지를 물어보며, “만원은 넘는 걸 사 왔어야지요~~.”했다.ㅋㅋㅋㅋ)


아이들에게만큼은 대가 없는 사랑을 준다고 수도 없이 고백했던 나 자신이 참 작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 아이들이 주는 커다란 기쁨과 환희의 미소를 되돌려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건네주는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아이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밤 솔직한 귀여움을 보여준 아이들에게 참 고마웠다.
엄마의 민낯을 점검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모성 역시 대가 없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섭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랑 주머니가 큰~~~ 엄마가 되기를 소망한다.


* 덧붙여,
비스킷을 눈으로 확인하고 난 아이들은 각자의 곰돌이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각자 곰돌이 한 마리 당 두 개씩이나 이름을 붙이고(푸름이, 곰톨이), (제제, 미키베어) 곰 등짝에 문신까지 새겨준 후 잠이 들었다.

푸름이, 제제와 우리 아이들이 오래오래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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