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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를 만나다

Day 63 -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로사 슐츠 박물관

by 바다의별

2017.04.05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특별히 더 기대가 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찰스 슐츠 박물관, 일명 스누피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피너츠 만화를, 스누피를 비롯한 그 수많은 캐릭터를 모두 사랑한다.

원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곳 역시 언니가 차로 함께 가주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사실 언니는 나만큼 스누피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결국 기념품샵에서는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입구에 서 있는 둥근 머리 소년, 찰리 브라운을 보자마자 신나서 달려갔다. 찰리의 입체적인 얼굴을 한번 끌어안고 뒤를 돌아보니, 뒤에는 또 스누피가 집 지붕 위에 올라 누워있었다. 날씨까지 딱 좋은, 동심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날!

찰스 M. 슐츠를 기리는 슐츠 박물관이 약간은 외져 보이는 이곳 산타로사에 있는 이유는 그가 죽기 전 30년 동안 이곳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박물관 주위에는 그가 자주 이용하던 카페 등도 함께 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상설전시는 늘 같을 테고 그때그때 특별전시를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작가 스누피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피너츠(Peanuts) 만화 속 스누피는 늘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데, 각 소설은 언제나 '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실제로 그 문장은 에드워드 불워-리튼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사용한 오프닝 문구로, 안 좋은 오프닝의 클리셰라고 한다.

글을 쓰는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들을 모아 전시해두었지만, 사실은 슐츠가 얼마나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였다. 실제로 피너츠 책들을 읽다 보면 유명 작가들의 이름도 나오고, 그가 사랑하는 하키 선수들의 이름도 나오는데, 슐츠가 다방면으로 관심도 많고 지식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실에 놓여있는 몇 권의 책들. 여행한 지 약 2개월 되었을 때라 집이 슬슬 그리워지고 있을 때, 행복에 대한 이 책을 보다 '행복은 자기 침대에서 자는 것'이라는 말에 100% 공감했다.

박물관의 한쪽 벽면에는 루시가 잡고 있는 미식축구 공을 발로 차려고 하는 찰리 브라운의 모습이 있었다. 매번 루시가 공을 치워버려서 찰리는 넘어지는데, 그걸 알고도 매번 속아 넘어간다.

이 그림은 여러 피너츠 만화들을 이어 붙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어렸을 때 마르고 닳도록 읽던 피너츠 만화들이 타일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니 그것도 새로웠다. 기념품샵에서 이것도 팔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스누피처럼 타자기를 쳐볼 수 있게 만들어둔 공간. 아이들이 주로 앉아있어 나는 앉을 기회가 없었다. 예전에 프랑스의 영어 서점 셰익스피어앤코에서 친구와 함께 타자기를 쳤던 것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다시 가보니 이제는 칠 수 없게 되어있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인데, 스스로 봉사자라고 칭하는 분들도 많았다. 아마 동네 주민들이 소일거리로 하는 듯했다. 모두들 상당히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분들은 우리를 모두 아이들처럼 대해주어 나 또한 아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시는 야외에도 이어져있었다. 왼쪽은 만화를 즐겨본 사람이면 알만한, 연 먹는 나무이다. 오른쪽은 어떤 나무 한 그루 앞에 붙어있는 것이었는데 찰스 슐츠의 부인이 찰스를 생각하며 만화 구절을 인용한 것 같았다. 박물관에는 슐츠의 부인이 내레이션 한 영상도 있었는데,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2층에 있는 이곳이었다. 슐츠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둔 곳.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만화가 만들어진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아,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작업실이 아니었다. 전시실을 다 둘러본 뒤 또 무엇이 있을까 기웃거리다 발견한 이곳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다. 아이들이 와서 만들기, 그리기, 색칠하기 등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았는데 우리도 한번 조심스레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안에 앉아있던 봉사자 분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우리도 신나서 동심으로 돌아가 스누피를 하나씩 오리고 색칠해 만들어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부에서 유명한 인 앤 아웃 버거를 먹었다. 나는 버거킹 와퍼를 가장 좋아하는데, 비슷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언니와의 마지막 식사를 하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 사소한 메모 #

*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피너츠는 때로는 심심함을 달래주고, 때로는 우울함을 덜어주고, 때로는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 "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look to tomorrow. (어제 배우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바라본다.)" - '피너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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